에어버스 등 항공기 제조업체들이 중국 항공사 등과 대규모 수주 계약을 체결하고도 미국 눈치를 보면서 고객 명단 공개를 꺼리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 와중에 주문 사실이 공개되면 유탄을 맞을 수도 있다며 고객들이 비공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
19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유럽연합(EU)의 에어버스는 지난 16일 개막한 영국 판버러 국제에어쇼에서 244억 달러 규모의 수주 계약을 체결했다. 미국의 보잉은 110억 달러 규모의 주문을 받았다. 하지만 구매자의 이름이나 상세한 계약 정보는 공개하지 않고 있다. 대규모 수주 계약 시 화려한 행사를 열고 고객 이름도 공개해온 관행에 비춰보면 상당히 이례적이다.
에어버스의 에릭 슐츠 최고판매책임자는 “지금 세계는 매일 아침 나오는 (트럼프 대통령의) 트윗에 지배받고 있다”며 “이것이 항공사들과 각국 정부에 상당한 압박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아시아 고객들은 ‘불에 기름을 붓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고 전했다. 중국 등 아시아 고객들이 미국 기업인 보잉 대신 유럽의 에어버스에서 항공기를 구매했다가 트럼프 행정부의 타깃이 될 것을 우려한다는 것이다.
에어버스는 지난 16일 익명의 리스 회사와 총 88억5000만 달러 규모의 ‘A320 네오’ 항공기 80대를 계약하는 양해각서(MOU)를 맺었다. 이밖에 115억 달러 규모의 소형 항공기 100대, 25억 달러 규모의 대형 항공기 ‘A350-900’ 8대 수주 계약이 체결됐다. 추가로 A330 네오 6대의 주문도 있었다. 비공개 계약의 대부분은 중국의 항공사 등과 체결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보잉도 중국 판매 여부는 밝히지 않고, 베트남 비엣젯 항공사에 737맥스 항공기 100대를 판매키로 한 사실을 공개했다.
한편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18일(현지시간) CNBC 인터뷰에서 “나는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중 협상에 대한 어떤 후속논의도 할 의사가 없다고 생각한다. 시 주석이 협상을 지연시키고 있다”며 무역전쟁의 책임을 시 주석에게 돌렸다. 커들로 위원장은 “우리가 지적재산권 침해 등에 대해 조치를 취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중국은 전혀 응답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화춘잉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미국 일부 인사들이 17세기의 돈키호테식 사고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한 입으로 두말하는 미국의 말에 신의가 없는 것은 전 세계가 이미 인정했다”며 “미국은 큰 몽둥이를 치켜들고 압박하면서 상황을 고조시키고 근본적인 원인을 제공했다”고 비난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