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여성은 결혼만 하면 ‘이상한 나라’로 간다. ‘시월드’라고 불리는 이 나라에서 사위는 백년손님이고 며느리는 백년일꾼이다. 여성은 육아와 가사를 도맡으면서 시댁의 대소사까지 살뜰히 챙겨야 한다. 때로는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말이다.
많은 남성들은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런 말을 하냐고 되물을 것이다. 하지만 이 같은 사실은 MBC 교양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를 보면 누구나 실감할 수 있다.
매주 수요일 밤 8시55분에 방영되는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며느리의 삶을 전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다. 배우 민지영, 댄서 마리, 개그맨 김재욱의 아내 박세미가 출연한다. 제작진은 이들이 며느리로서 얼마나 많은 책임과 희생을 떠안고 사는지 생생하게 그려낸다.
교양의 무거움을 덜어 낸 자리에 예능의 가벼움을 보탠 프로그램이다. 시청률은 2∼3% 수준이지만 화제성은 상당하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지난 4월 파일럿(시범) 프로그램으로 첫선을 보였는데 폭발적인 반응이 이어지자 결국 지난 6월 정규 편성됐다. 매주 방송이 나가면 관련 기사에는 공감을 표시하고 공분을 드러내는 여성들의 댓글이 이어진다.
정성후 책임 프로듀서는 24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그동안 며느리들이 겪는 불합리한 일들은 여성들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개인적인 문제였다”며 “하지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개인적인 차원에 머물러 있던 여성의 고충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올해 초 MBC가 외주 제작사를 상대로 진행한 아이템 공모를 통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 정 PD는 “상반기에 ‘미투 운동’을 비롯해 페미니즘 문제를 환기시키는 사건이 많았다. ‘며느리 프로그램’을 만들면 반응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자극적인 내용이 없는데도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는 건 방송에 등장하는 에피소드가 보편적으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라며 “지금껏 그래왔듯이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는 대한민국 며느리가 겪는 고충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프로그램이 될 것”이라고 했다.
이 프로그램의 특징은 남편이나 시부모가 ‘평범한’ 모습을 보여준다는 데 있다. 막장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악덕 시부모’ ‘악덕 남편’이 아니다. 남편은 아내가 행여 서운한 생각이 들진 않을까 항상 배려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시부모들도 며느리를 따뜻하게 보듬어준다.
하지만 방송을 보면 대한민국에서 며느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실감하게 된다. 방송에 출연하는 남편들은 시댁에 가면 늦잠을 자고, 아내와 시어머니 사이에서 ‘조율’을 제대로 하지 못해 곤란한 상황을 만든다. 신생아를 둔 아내는 주야장천 ‘육아전쟁’을 치러야 한다. 주변에서 흔히 듣고 보던 며느리의 삶을 TV 화면에 담아낸 셈이다.
소설 ‘82년생 김지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조남주 작가는 MBC 사보에 기고한 글을 통해 “(이 프로그램에서는)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괴롭히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아내에게 순종을 강요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사소하고 악의 없는 습관일 뿐”이라고 적었다. 이어 “문제는 ‘며느리’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가 ‘이상한 나라’라는 데에 있다”며 “(며느리의 삶을 담아내는) 이런 이야기가 좀 더 많아지면 좋겠다”고 전했다.
실제로 이 프로그램 외에도 최근 문화계에는 며느리의 이야기를 다룬 콘텐츠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웹툰 ‘며느라기’는 페이스북 팔로어가 23만명이 넘을 정도로 인기다. 올해 초 등장한 다큐멘터리 영화 ‘B급 며느리’, 에세이 ‘며느리 사표’도 화제가 됐다.
전문가들은 ‘며느리’가 대한민국 남성의 위선과 여성의 열악한 삶을 동시에 드러내는 ‘코드’로 자리 잡았다고 입을 모았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여성 권익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기혼 여성이 겪는 문제점들이 부각되고 있다”며 “여성들에게 격려와 위로를 선사하는 ‘며느리 콘텐츠’는 앞으로도 꾸준히 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