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을 하면서 가장 자주 쓰는 단어가 뭘까? 우울, 불안, 분노…. 단언컨대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입에 가장 많이 오르내릴 것이다. 마음이 괴로운 이유를 밝힐 때도 “무엇 때문에 스트레스 받아요”라고 하고, 자신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호소할 때도 “스트레스 받아 미치겠어요”라고 한다. 의사들은 환자에게 “스트레스가 만병의 근원이에요. 스트레스 받지 마세요”라며 식상한 조언을 내뱉곤 하는데, 이 말을 들은 사람 백이면 백 ‘누군들 그걸 모르나. 스트레스 받지 않으려고 해도 그게 안 되니까 당신을 찾아왔지!’라는 억한 감정을 느낄 게 뻔하다. 닳고 닳은 표현이라 환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그만 써야겠다고 다짐하지만, 나도 진료를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스트레스라는 단어를 자주 언급하게 된다. 몇 년 전, 한 기업체에서 ‘스트레스 다스리는 법’이라는 주제의 원고 청탁을 받고 나름대로 열심히 써서 보냈더니 편집자로부터 “스트레스라는 단어가 너무 많아 읽기 거북하다”는 핀잔을 들은 적도 있다. 이 글을 쓰면서도 조심하지만 여전히 잘 안 된다. 스트레스를 언급하지 않고 말하기가 어려운 이유는 사는 동안 스트레스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의 숙명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인터넷에 떠도는 사진 한 장을 발견해서 스트레스를 주제로 강의할 때마다 활용하고 있다. 총알 자국들이 선명하게 박힌 과녁을 군인이 양손으로 붙들고 앉아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다. 누군가 재밌으라고 상황을 연출한 것이겠지만 스트레스의 본질을 정확히 보여준다. 과녁을 들고 있는 사진 속 군인이 총 맞을까봐 무섭다고 도망칠 수 있을까. 속으로야 두려움에 떨고 있어도 절대로 과녁을 버리고 달아나지 못할 것이다. 생활비를 벌어야 하고, 집세와 세금도 내야 하고, 아이들 교육도 시켜야 하니 괴롭더라도 그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사람마다 스트레스 받는 상황은 제각각이지만 본질은 똑같다. 현실을 조절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을 자신이 갖고 있지 않다고 인식할 때 스트레스를 경험하게 된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바로 스트레스인 것이다. 이런 상황을 두고 ‘통제 소재(locus of control)가 외부에 있다’고 한다. 사장이 밤새도록 일하면서 받는 스트레스와 말단 직원이 상사의 지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밤을 새우며 느끼는 스트레스가 다른 것은, 사장은 자기 의지대로 일을 조절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지만 말단 직원은 그럴 권한이 없다고 지각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정상의 기준을 바꿔야 한다. 스트레스는 없애야 하는 게 아니라 인생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도망칠 수 없고 제 힘으로 풀 수 없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겪는 것이 스트레스인데, 벗어나겠다고 발버둥치면 힘만 빠지고 더 괴로워진다. 통제 소재가 자신에게 없어서 스트레스 받는 것인데 그걸 풀어보겠다고 무턱대고 달려들면 오히려 탈이 난다. 어차피 인간은 누구나 고통스럽다. 나만 괴롭고 나만큼 괴로운 사람은 없을 거라 믿으면 스트레스는 더 쌓인다. 삶의 고통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찾아온다고 인식하면 스트레스 속에서도 단단하게 버텨낼 수 있다.
자책하지 않아야 한다. ‘내가 못난 사람이라서 스트레스 받는 건가’라는 의심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된다. 스트레스는 내가 누구인가 하는 것과는 아무 상관없이 찾아오는 불청객이다. 착하게 살아도 암에 걸리고, 운전이 능숙해도 어쩔 수 없이 교통사고를 겪을 수 있으며, 일 잘하고 성실해도 성질 고약한 상사를 만나면 직장생활은 고해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심할수록 자신에게 다정해야 한다. “그래, 잘 견디고 있어”라고 자기를 다독여야 한다.
스트레스란 삶의 의미를 다시 찾으라고 뇌에서 보내는 메시지다. 자신의 행동이 의미 있다고 느끼면 스트레스는 줄고, 가치에서 멀어지는 행동을 할수록 더 느끼게 된다. 병원 청소를 맡은 사람이 ‘하루 종일 더러운 바닥만 닦아야 하니까 스트레스 받아’라고 생각하지 말고 ‘나는 환자의 건강을 최전선에서 지키고 있어!’라고 인식하면 스트레스 덜 받고 활기도 얻을 수 있다. 마을버스 기사가 “매일 똑같은 노선을 따라 운전하는 게 지겨워”라고 하지 말고 “나는 사람들을 보금자리 가까이로 안전하게 데려다주는 일을 하고 있어!”라고 다르게 이야기해보는 것이다. 스트레스는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 일상을 새롭게 해석해보라는 신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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