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저자 파커 J 파머(79·사진)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게 참고가 될 것 같다. 파머는 어느 날 매우 괴로운 마음을 안고 고민하던 자신의 결점을 친구에게 조용히 고백했다. 그러자 그 친구가 파머에게 돌려준 말. “인류가 되신 것을 축하합니다”였다. 우리말로 하면 “너도 사람이었구나”쯤 될 테다.
미국에서 완벽한 지성인이자 사회운동가로 존경받아온 파머는 ‘교사들의 교사’로 불리기 때문이다. 그는 UC버클리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수차례의 교수직 제안을 거절하고 사회 운동과 공동체 교육에 헌신했다. 그런 가운데서 자신의 목표와 현실의 괴리 사이를 배회하며 끝없이 고뇌하는 섬세한 영혼의 소유자였다.
파머는 대표적 저서 ‘비통한 자들을 위한 정치학’에서 그런 고민의 결론으로 “비통한 자들, 즉 마음이 부서진 자들에 의해 민주주의가 진보한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다. 열 번째 책 ‘모든 것의 가장자리에서’는 나이듦에 대해 쓴 에세이 24편을 묶은 것이다. 파머 스스로 “나이듦과 협력한 결실”이라고 했다. 우아하게 늙어가는 것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다.
부제는 ‘나이듦에 관한 일곱 가지 프리즘’이다. 노년이라는 인생의 가장자리에서 볼 수 있는 것들, 젊은이들과 마주하는 법, 위험을 감수하며 사회에 참여하는 것, 존재에 뿌리내리는 방식 등에 대해 썼다. 글인데도 불구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듣는 듯한 착각이 든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파머의 깊은 경륜과 겸손한 태도가 배어있어서다.
그는 나이 드는 우리에게 ‘내 삶에 의미가 있는가’라는 질문에 매달리지 말라고 조언한다. 새와 나무가 삶에 의미가 있는지 궁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듯, 있는 그대로의 삶을 받아들이라고 한다. 파머는 태양 아래 서서 나 자신과 타인들이 생명과 사랑으로 성숙해갈 수 있도록 돕기를 희망하면서 “만물 가운데 하나”로 최선을 다해 매 순간 살아간다고 얘기한다.
나이듦을 받아들이면 내가 똑똑하고 멋지다는 거짓에 사로잡혔던 젊은 시절을 넘어, 진실을 향해 시들어갈 기회가 열린다. 바로 모든 인간은 어둠과 빛의 복잡한 혼합물에 불과하다는 영적 진실이다. 이 진실을 받아들이면 “에고(ego)는 쪼글쪼글해질 수밖에” 없단다. 파머는 그래서 우리에게 주름이 생기는 거라며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그는 “우리가 저지른 실수를 젊은이들이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가 아니고, 그들의 세계는 우리가 살아온 세계가 아니며, 그들이 젊은 날의 우리보다 더 현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젊은이와 노인은 함께 춤을 추듯 서로에게 배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삶의 지혜를 선물로 주고, 젊은이들은 앞선 세대에게 에너지, 비전 그리고 희망이라는 선물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꼰대처럼 가르치려 들지 말란 거다.
또 삶이라는 여인숙에 찾아오는 기쁨, 절망, 하찮음, 슬픔 등 모든 손님을 존중하고 환영하란 말도 한다. 그 손님들은 내가 살아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는 삶의 동반자라는 것이다. 글 모음이라 산만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어디를 펴도 깊이 음미할 만해서 한 편씩 천천히 읽어가다 보면 평안을 느낄 수 있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