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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길] 평론과 에세이를 동시에 읽는 듯한 즐거움 선사



저자는 언젠가 인터뷰에서 이런 질문을 받았다. “무인도에 간다면 어떤 책을 가져가실 건가요?” 당시 그가 내놨던 답변은 이랬다. “‘슬램덩크’요. 혹시 3권을 가져가야 한다면 (슬램덩크 단행본) 22권부터 24권까지를 가져갈게요.”

만화 슬램덩크를 읽은 적 있다면 22∼24권이 어떤 내용인지 알 것이다. 이들 책에는 주인공 강백호가 속한 북산고와 고교 농구 최강자인 산왕공고의 승부가 담겨 있다. 슬램덩크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는데, 저자는 “그 3권이라면 무인도에서도 살아갈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이어지는 슬램덩크 예찬론은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슬램덩크 키즈들은 이제 어느덧 자신의 의지와는 별로 상관없이 사회라는 코트에 섰다. …손에는 이미 농구공이 들려 있고 버저비터는 몇 초 남지 않았다. 패스할 곳도 보이지 않고 자신 없는 슛을 쏴야 한다. 나는 그때 잠시 ‘타임’을 부르고 슬램덩크를 펴는 것이다.”

‘고백, 손짓, 연결’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대리사회’ 같은 작품으로 필명을 날린 김민섭(35)의 신작이다. 그는 자신의 삶에 영향을 끼친 만화 20여편을 차례로 도마에 올린다. 진지한 평론처럼 여겨지거나, 혹은 가벼운 일기처럼 느껴지는 글들이 차례로 등장한다.

저자는 ‘드래곤볼’에서 연대의 코드를 찾아내고 ‘마린블루스’를 통해 자신이 걸어온 길을 되짚는다. ‘복학왕’ 작가인 기안84에 대해선 “현실의 밑바닥을 포착해 가장 섬세하게 그려내는 능력을 가진 작가다. 자신을 내려놓고 ‘있는 그대로’를 표현할 줄 안다”고 평가한다.

저자는 “평론이라기에는 가볍고 에세이라기에는 무거운, 그런 어중간한 무게감을 가진 책”이라고 말했다. 그의 소개처럼 ‘어중간한 무게감’을 느낄 수 있는 글들이니 만화에 관심 없는 사람이라도 부담감 없이 읽을 듯하다. 저자의 필력이 상당하니 위로와 격려를 전하는 몇몇 대목에선 가슴이 뻐근해지는 느낌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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