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화 60년展, 특정 작가들 쏙 뺀 ‘그들만의 잔치’

오윤의 판화 ‘칼노래’. 경매에서 한국 판화 사상 최고가를 기록했지만 경기도미술관 기획전 ‘판화하다-한국현대판화 60년’ 전시에는 보이지 않는다. 서울옥션 제공
 
‘판화하다’의 전시 전경. 한국현대판화가협회와 공동 기획한 것으로 협회의 역대 회원 120명의 작품을 선별해 선보이고 있다. 경기도미술관 제공


한국 현대판화 흐름 조망한다면서 협회 회원 아니라는 이유로
오윤·김준권·이철수·김억 등 민중미술계 작가 배제시켜 논란


“어, 오윤 판화가 안 보이잖아!”

경기도 안산에 소재한 도립 경기도미술관이 ‘한국현대판화 60년’이라는 타이틀을 걸고 하는 기획전에서 오윤(1946∼1986)의 작품이 보이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거릴 관람객들이 많을 것 같다. 오윤은 판화하면 떠오르는 가장 대중적인 작가여서다. 그의 작품 ‘칼노래’는 지난 5월 경매에서 7500만원에 낙찰되며 국내 판화 최고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경기도미술관이 오는 9월 9일까지 선보이는 기획전 ‘판화하다-한국현대판화 60년’을 특정 단체와 공동 주관한 탓에 한국 미술사를 왜곡할 소지를 안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회장 신장식 국민대 교수)와 공동 기획한 이 전시는 1세대부터 현재까지 역대 회원 가운데 대표적인 120명을 선정해 각인하다(목판화), 부식하다(동판화), 그리다(석판화), 투과하다(실크스크린) 등 기법별로 4섹션으로 나눠 소개한다. 그럼에도 보도 자료에는 “대표 작가 120명을 통해 한국 현대판화의 성과와 흐름을 조망”한다며 단체의 역사가 아닌 한국 판화사 전체를 조망하는 것처럼 적고 있다.

전시는 분류 방식에서부터 한국 현대판화 60년의 맥을 짚어보겠다는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 전시기획자 김노암씨는 “60년의 흐름을 짚자면 시기별 혹은 주제별로 성쇠를 고민해보는 등 몇 가지 기준이 있다”며 “제작 기법이나 기술적 변화를 가지고 60년을 논하는 건 격이 맞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 판화사의 궤적을 보면 1951년 프랑스에서 활동한 작가 이항성이 최초로 석판화 개인전을 열었고, 58년 한국판화협회가 창립됐다. 이후 60년대 해외 유학파 김정자 윤명로 등이 대학에서 판화 교육을 하면서 판화 장르가 발전했고, 68년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창립됐다.

판화 전문가인 김진하 나무기획 대표는 “70년대는 한국 판화의 구축기”라며 “이전까지 판화가 회화의 부속 장르로 여겨졌던 것과는 달리 이때부터 김상유 송번수 김형배 오윤 등을 중심으로 판화가 독자적인 장르로 발전하며 다양한 실험이 이뤄졌다”고 평가했다.

80년대 들어 민주화 운동이 거세지며 판화계에도 혁신의 바람이 불었다. 한국현대판화가협회가 미술을 위한 미술을 주장하는 모더니즘 계열의 ‘제도권 미술’이라며 현실과의 접목을 주장하는 민중미술 계열의 판화 운동이 일어났던 것이다. 판화는 노동운동과 학생운동 현장에서 대형 걸개그림으로 내걸렸다. 그 중심에 오윤이 있었다. 70년대까지 판화가 순수미술로만 이해됐다면, 80년대 들어 판화는 전시장 미술이면서 동시에 현장 미술의 기능을 수행했던 것이다.

문제는 이들이 한국현대판화가협회 회원이 아니라는 이유로 전시에서 배제된 점이다. 더욱이 80년대 민중미술 계열로 활발히 활동했던 김준권 이철수 김억 등은 지금까지도 꾸준히 활동하고 있음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김진하 대표는 “민중미술 계열이 빠진 것은 현대판화사의 절반을 쏙 빼고 진행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했다. 김준권 작가는 “미술사를 단체 중심으로 전개하면 이런 오류가 생긴다”며 아쉬워했다.

익명을 요구한 미술기획자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의 창립 50주년 기념 잔치 성격 아니냐”며 “대관전이 마땅한데 경기도미술관이 공동 기획자로 나서면서 전시를 통해 미술사를 재정립해야 하는 공공미술관의 본분을 잊었다”고 꼬집었다.

손영옥 선임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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