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출판

[책과 길] “사라지는 시간·공간·사람이 애틋합니다”



문학 신간 코너에서 희곡 작품을 본 적이 있던가. 2012년 초연된 연극 ‘지금도 가슴 설렌다’(걷는사람)가 책으로 나왔다. 희곡 출간이 드물다 보니 이제야 책으로 독자들을 만나게 됐다. 이것도 출판사 걷는사람의 희곡선 시리즈 기획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첫 장막 희곡을 출간한 극작가 이혜빈(31·사진)을 최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서울예대 영화과에 다니던 그는 “경기도 안산에 살 땐데 극작과 수업을 들으면서 연극에 푹 빠졌고 거의 매일 저녁 대학로로 향했다”며 “소극장에서 연극 보는 시간을 좋아하다 보니 극작도 자연스럽게 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때 본 연극 중 극작가 배삼식의 ‘하얀 앵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이혜빈은 “‘하얀 앵두’는 사라지는 모든 존재에 대한 연민을 느끼게 한다”며 “희곡 자체도 좋지만 공연으로 만들어진 세계 전체가 나를 위로하는 느낌”이었다고 했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 역시 사라지는 시간, 공간, 사람에 대한 애틋함을 품고 있다.

이 작품은 열여덟 살 여고생 달리를 중심으로 부모, 조부모 3대가 등장하는 가족극이다. 한데 모인 가족들이 저마다 가진 응어리를 드러내며 갈등하는 모습을 그린다. 무엇을 담고 싶었냐는 질문에 “인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가족”이라며 “독자들이 읽고 느끼는 게 있다면 그게 내가 담고 싶었던 것”이라고 했다.

작품에 자전적 요소가 많지 않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이혜빈은 “사실 자전적 경험은 거의 없다”면서 “어릴 적에 살던 아파트 복도에서 짝사랑하던 오빠의 집 마당을 내려다본 경험 정도가 비슷하고 나머지는 주변 사람이나 사건을 유심히 관찰해서 만들어 낸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극중 엄마 은희가 딸 달리에게 하는 말이다. 이 말도 이혜빈이 엄마에게 직접 들은 얘기다. 이혜빈은 “남자에게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어서 비교는 안 되지만 엄마가 나한테 그 말을 했을 때 감동을 받았다”며 웃었다.

그가 생각하는 연극의 매력은 뭘까. 이혜빈은 “많은 요소가 결합되는 무대의 운동성이 연극의 가장 큰 매력”이라며 “내가 쓴 희곡이 연출가와 배우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는 걸 앞으로도 계속 보고 싶다”고 했다. 시보다 강한 정서를 담고 있는 ‘지금도 가슴 설렌다’는 어떤 안온함을 준다. 그의 꿈은 “어느 누군가에게 ‘가장 사랑하는 작가’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 그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는 ‘벚꽃 동산’을 쓴 러시아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이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