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윤의 뮤직플레이] 가요계의 꼼수 마케팅… 선량한 뮤지션 울린다







구린내가 진동했다. 무명에 가까운 가수가 인기 아이돌 그룹들을 제치고 여러 음원사이트의 차트 정상을 꿰찼다. 방송 출연도, 톱스타가 시청률 높은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노래에 대해 언급한 일도 없었다. 발매 직후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했던 노래가 눈에 띄는 사건 없이 단 2주 만에 차트 1위에 오른 것이 영 석연치 않아 보였다. 특히 이용자 수가 줄어드는 자정 무렵에 상승세를 보인 점도 수상했다. 3개월 전 사재기 의혹을 받은 닐로의 차트 정복과 거의 동일했다.

이러한 정황으로 인디밴드 칵스의 키보드 연주자이자 일렉트로닉 댄스음악 디제이로 활동 중인 숀이 빈축을 사고 있다. 인디 음악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꽤 많이 알려진 편이지만 그가 차트에서 밀어낸 걸그룹 트와이스나 블랙핑크에 비하면 결코 인지도가 높다고 할 수 없다.

지난달 27일 발매돼 이달 16일 차트 정상에 등극한 숀의 ‘웨이 백 홈(Way Back Home)’은 심지어 해당 음반의 타이틀곡도 아니다. 뮤직비디오까지 제작한 타이틀곡 대신 다른 노래가 갑자기 차트에 치솟는 일은 극히 드물다. 냄새가 나는 것이 당연하다.

논란이 일자 숀의 소속사는 사재기나 불법 행위는 없었음을 호소했다. 오직 SNS 홍보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아무리 구독자가 많은 SNS 계정을 통해 노래를 선전했다고 해도 밤늦은 시간에 수만명이 뭔가에 홀린 듯 동시다발적으로 그 노래를 듣는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사이비 종교 집단 교주가 ‘웨이 백 홈’을 전파했다고 하는 것이 더 쉽게 수긍될 만하다. 따라서 음원사이트에 수백, 수천개의 아이디를 만들어 노래를 반복 재생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은 억측이 아니라 온당한 짐작이 된다.

당사자들은 극구 사재기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뉴미디어 마케팅’이라고 일컫는 방식은 한편으로 이해를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음원사이트의 차트 20위까지의 상위권은 거의 항상 아이돌 가수, 예능 프로그램에서 소개된 노래나 드라마 사운드트랙, 음악 경연 프로그램을 통해 이름을 알린 뒤 어느 정도 좋은 반응을 획득해 온 젊은 싱어송라이터로 삼분되는 구도를 보인다. 이 현상은 이름 있는 기획사에 속하거나 방송 출연의 은혜를 입은 가수가 아니면 성공하기 어려운 현실을 방증한다. 신생 회사에서 제작한 가수, 비주류 뮤지션으로서는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이들의 행동이 업계에 미칠 영향이다. 과정이 미심쩍다고 해도 음원차트 1위에 오르고 나면 인지도는 자연히 상승한다. 유명해지면 행사 출연 요청이 더 들어오고, 활동이 많아질수록 보수도 뛴다. 잠깐의 비난을 견디면 확 달라진 지위를 누릴 수 있다. 많은 사람이 혹할 제안이다. 이로써 공들여 멋진 음악을 만들기보다 영악한 마케팅에 사활을 거는 움직임이 만연한다. 작품이 좋으면 저절로 응원이 따를 것이라며 지조를 지키는 뮤지션들에게는 패배감이 전달된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그림이다.

닐로가 사재기 논란을 빚은 뒤 음원사이트들은 지난 11일부터 오전 1시에서 7시까지 실시간 차트를 운영하지 않는 제도를 실시했다. 하지만 숀이 1위에 등극함에 따라 애써 실시한 방지책은 유명무실함만 드러내게 됐다. 차트가 폐지되지 않는 이상 1위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 가능한 일인 것이다. 이번 일은 가수들이 음원차트 1위에 집착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헤아려 보게 한다. 아이돌 그룹, 대형 기획사에 속한 인물이 아니면 방송을 타거나 매체로부터 주목을 받기가 요원하다. 차트에 드는 것이 많은 사람의 눈길을 끌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이다. 고질적인 쏠림 현상, 미디어의 외면이 추잡한 꼼수에 의존하는 야심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한동윤 <음악평론가>

음악평론가 한동윤은 음악 웹진 이즘, 음원사이트 멜론 등에 대중음악과 관련된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저서로는 ‘힙합열전: 음반으로 보는 영미 힙합의 역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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