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바일D램·낸드플래시…‘승자독식’ 기술 지켜라



반도체 업체의 기술격차가 점점 중요해지는 것은 모바일 시대의 특수성 때문이다. 스마트폰처럼 항상 가지고 다녀야 하는 기기는 크기가 작아야 하고, 전원에 연결하지 않고도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스마트폰에서 고사양 게임을 할 수 있어야 할 정도로 성능에 대한 소비자의 눈높이도 높아졌다.

때문에 스마트폰 제조사들은 보다 작고, 전력을 적게 소모하면서도 높은 성능을 구현할 수 있는 반도체를 찾는다. 이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제품은 가격이 낮다고 해도 사지 않는다. 예를 들어 스마트폰 제조사가 16GB 메모리를 사려고 한다면 시장에 나와 있는 것 중에 가장 작고, 전력 소모가 적은 제품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스마트폰 성능과 배터리 수명에 직결되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거기에 속도까지 빠르면 금상첨화다. 과거 PC 시절이라면 가격 상황에 따라 8GB짜리 2개를 붙일 수도 있지만 스마트폰에선 공간의 제약 때문에 그렇게 못한다. 기술력이 앞선 업체가 승자독식을 할 수 있는 구도가 공고해진 것이다.

한국 반도체 업체들은 모바일 D램과 낸드플래시에서 경쟁업체들과 기술격차를 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 세계 최초로 256기가비트(Gb) 5세대 V낸드 양산에 돌입했다. 전 세대 제품인 4세대 V낸드와 같은 양의 전력으로 1.4배 빠른 속도를 낸다. V낸드는 메모리를 수직으로 쌓아올리는 기술이다. 같은 면적에 더 많은 용량을 확보할 수 있다. 동일한 면적의 땅에 아파트를 지으면 더 많은 세대가 살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다. 5세대 V낸드는 저장단위인 메모리 셀을 90단 이상 쌓아올렸다. 도시바, 마이크론 등 경쟁업체는 현재 4세대 64단 낸드를 만든다. 삼성전자와의 격차는 2년 이상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낸드 플래시 시장에서 38%의 점유율로 독보적인 1위를 달리고 있다. SK하이닉스는 11.1%로 도시바(17.1%) 웨스턴디지털(16.1%) 마이크론(11.5%)에 이어 5위를 기록했다. 한국 업체의 점유율 합은 거의 50%에 육박한다. 삼성전자는 모바일 D램에서도 ‘세계 최초’ 수식어를 독차지하고 있다. 최근에는 업계 최초로 2세대 10나노급 모바일 D램 양산에 돌입하며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D램 점유율은 40%를 넘는다.

기술력이 앞서다보니 시장의 수급 흐름과 무관하게 수익을 올릴 수 있다. 최근 D램 가격이 하락하고 있지만 삼성전자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9일 “시장에서 거래되는 메모리 반도체의 현물가격(스폿 프라이스)은 하락하고 있지만 우리는 대부분 연간 단위로 미리 계약하기 때문에 영향이 적다”고 설명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DR4 8Gb(2133㎒) 제품의 평균 도급가격(콘트랙트 프라이스)은 지난해 7월 6.81달러에서 올해 6월 말 8.19달러로 상승했다. 삼성전자 제품이 가장 프리미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공급 가격은 더 올랐다고 유추할 수 있다.

결국 ‘초기술격차’가 승부수라는 판단하에 국내 업체들은 기술 확보를 위한 투자에 나서고 있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7일 이천 공장 신규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2분기 사상 최대 영업이익인 5조5739원을 기록한 직후 나온 결정이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3조5000억원을 투자하며 2020년 10월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완공 이후 장비 투자까지 포함하면 총 투자규모는 15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SK는 하이닉스 인수 이후 3곳의 공장에 총 46조원을 투자했다. SK하이닉스는 사상 최대 실적으로 투자의 가치를 증명했다.

지난해 43조4170억원을 투자한 삼성전자도 조만간 대규모 투자 계획을 발표할 가능성이 높다. 문재인 대통령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만나 투자를 요청했고, 김동연 경제부총리도 조만간 삼성을 방문할 계획이다. 이런 외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무엇보다 경쟁력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투자가 필수적이다. 특히 최근 들어 7나노미터(㎚) 이하의 반도체 미세 공정의 한계가 온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는 점에서 이를 극복하기 위한 기술개발의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