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과 문화를 뛰어넘어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건 무엇일까, 그런 의식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의식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니고요. 단지 제게 절실한 주제와 모티프를 파헤치다 보면 전해질 것은 분명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일본의 영화 거장 고레에다 히로카즈(56) 감독은 30일 서울 종로구 씨네큐브 광화문에서 진행된 내한 기자간담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신작 ‘어느 가족’으로 올해 제71회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그는 “한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의 관객들이 내 작품을 위화감 없이 받아들여줘서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저는 작게 낳아서 오랫동안 길게 시간을 들여 잘 키워가자는 마음으로 작품 활동을 해 왔습니다. 칸영화제에서 큰 상을 수상하게 돼 뜻하지 않은 기쁨을 누리고 있는데, 지금껏 한결같은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어 온 것에 대한 보답을 받은 것인가 싶습니다.”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를 시작하고 초반 15년 정도는 독립영화를 주로 만들었다”면서 “영화를 만드는 자세와 태도에 있어서는 그때와 비교해 변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지금은 국내외 많은 관객들이 제 영화를 봐주실 수 있게 됐다”고 감사해했다.
‘아무도 모른다’(2004)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2013) ‘바닷마을 다이어리’(2015) 등 전작들에서 가족에 대한 따뜻한 시선과 시대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 고레에다 감독은 국내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어느 가족’ 역시 가족이라는 소재를 다루고 있으나 기존 작품들과는 미묘한 차이를 보인다. 영화는 할머니의 연금과 훔친 물건으로 근근이 살아가는 한 가족의 모습을 비추는데, 이들은 혈연관계의 ‘진짜 가족’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서서히 드러난다.
고레에다 감독은 “가족은 어때야 한다든가 좋은 가족은 어떤 것이라는 식의 정의를 내리고 싶지 않았다”며 “억압적으로 가족의 형태를 규정하는 건 좋은 자세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혈연이 아닌 형태로 공동체를 구성해 살아가는 사람들의 가능성을 생각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어느 가족’의 칸 황금종려상 수상은 일본 영화계가 ‘우나기’(1997) 이후 21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그러나 수상 당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축하 인사를 전하지 않았다. 고레에다 감독의 정치 성향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뒷말이 나왔다.
이와 관련한 질문에 고레에다 감독은 “영화의 본질과는 상관없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국회에 더 중요한 일들이 산적해 있는 상황에 내 영화가 정쟁의 소재가 되는 건 마음이 편치 않다. 가능한 한 그런 얘기는 피하고 싶다”고 말을 아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