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외교를 총괄하는 양제츠 정치국원이 지난 11일 방한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만난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남·북·미 3자를 중심으로 진행되던 종전선언 논의에 중국이 적극 참여하는 양상이다.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4자 회담 틀을 만들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베이징 고위 소식통은 30일 “양 정치국원이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과 함께 최근 한국을 방문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외교 소식통은 “양 정치국원이 부산에서 정 실장을 만나 종전선언과 평화 체제 구축 관련 4자 회담 등을 논의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노영민 주중 대사도 잠시 귀국해 회담에 배석한 것으로 전해졌다.
양 정치국원과 정 실장이 극비리 회동한 지 2주 만에 쿵 부부장은 평양을 방문해 이용호 외무상을 만났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중국의 종전선언 참여를 기정사실화하는 발언을 했다.
강 장관은 “중국이 종전선언의 협의 대상이 되는 건 판문점 선언에서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며 “장기적으로 중국의 참여가 합의에 무게를 더할 수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판문점 선언에 종전 선언 및 평화 체제 구축을 위한 회담 주체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가 명시돼 있음을 언급한 것이다.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차 31일 싱가포르를 방문하는 강 장관은 왕이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과 만날 것으로 보인다. ARF는 북한이 유일하게 참여하는 역내 다자 협의체다. 이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도 참석할 예정이어서 남북, 한·미, 한·중, 북·미, 남·북·미 등 동시다발적 회담이 예상된다.
외교가에선 중국의 참여가 종전선언을 더 더디게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미국이 종전선언 자체에 회의적인 데다 미·중 관계도 껄끄러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미 정부는 북한이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배경에 중국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다. 한·중 간 종전선언 논의가 미국을 자극할 수 있다는 얘기다. 미국은 지난 6∼7일 폼페이오 장관의 3차 방북 때 북측에 핵 프로그램 신고와 비핵화 로드맵 제출을 요구한 뒤 이 같은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당시 폼페이오 장관의 카운터파트였던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은 ‘종전선언이 먼저’라고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북·미 모두 협상을 깰 생각은 없지만 서로 받은 것 없이 양보만 했다는 인식이 강하다”며 “가을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동시행동 원칙을 도출하고, 2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최고 수준의 신뢰를 형성해야 양측 모두 행동에 나서기가 수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지난해 10월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둔갑해 국내로 반입된 사건과 관련해 수입업체 2곳에 대한 조사 결과를 조만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는 이를 토대로 북한산 석탄을 싣고 국내 입항했던 외국 선박 2척이 향후 다시 입항할 경우 억류할지도 결정할 방침이다. 북한산 석탄은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2371호)상 금수 품목으로 지정돼 있다. 정부는 북한산 석탄을 싣고 온 선박이 올해 들어 수차례 국내에 들어왔는데도 억류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 정부는 북한산 석탄 반입 건에 대해 우리 측에 어떠한 우려도 표명한 바 없다”고 설명했다.
권지혜 기자,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jhk@kmib.co.kr
양제츠·정의용 회동… ‘종전선언’ 4자회담 논의한 듯
입력 : 2018-07-30 15: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