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색 벨벳으로 장식한 고풍스러운 공연장이 텅 비어 있다. 5층으로 이뤄진 객석과 천장에 밝은 조명이 켜졌지만 공연이 열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사람의 기색이 없어 클래식한 극장의 디테일이 더욱 또렷이 다가온다. 고요하고, 장엄하다. 그뿐인가. 극장이 품고 있는 시간과 예술의 흔적도 떠올려진다. 저 객석에 앉아 환호했을 관객, 무대에서 열정적으로 탱고를 추었을 무용수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독일을 대표하는 여성사진가 칸디다 회퍼(1944∼)는 2006년 아르헨티나로 날아가 ‘세르반테스 국립극장’을 찍었다. 스페니시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극장은 개관 이래 연극과 무용이 쉼 없이 올려지는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대표하는 극장이다. 1921년부터 수많은 공연들이 줄기차게 올려졌던 유서 깊은 극장을 회퍼는 광각렌즈로 아름답게 담아냈다.
회퍼는 독일 현대사진의 지평을 넓히며 뒤셀도르프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베허 학파’의 1세대 작가다. 도서관, 박물관 등 공적 건축물의 내부를 담은 그의 사진에는 사람이 없다. ‘사람이 없을 때 공간을 더 풍부하게 지각할 수 있기 때문에 인간을 배제한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그 역시 데뷔 초에는 인간을 찍었다. 영국 리버풀 풍경을 시작으로, 독일에 이주한 터키인들을 찍었다. 그러나 80년대부터 사람들이 어떻게 공간을 구성했는지, 인간은 그 공간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 탐구하면서 인간이 부재한 공간을 뷰파인더에 담았다.
본래 인간에 의해 기능하는 곳이니 굳이 인간을 포함시키지 않아도 인간이 축적한 기억들은 저절로 떠올려지게 마련이다. 오히려 보이지 않는 시간들이, 공간과 사람의 유기적 관계들이 더 깊이, 더 잘 유추된다. ‘부재의 미학’이란 이런 것이리라.
이영란 미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