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우산을 쓴 누군가가 새하얀 눈이 쌓인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흰색과 빨간색의 조화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킨다. 저 사진의 제목은 ‘발자국(Footprints)’. 미국의 사진작가 사울 레이터(1923∼2013)가 1950년에 촬영한 작품이다. 발자국이 담긴 페이지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사진가가 주는 선물은 일상의 간과된 아름다움일 경우가 종종 있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은 고인이 남긴 대표적인 사진과 회화 작품을 그러모은 사진집이다. 그런데 레이터는 어떤 인물일까. 오랫동안 그는 ‘엘르’나 ‘보그’ 같은 패션 잡지에 사진을 실은 무명의 작가였다. 유명세를 타기 시작한 건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부터다. 독일의 한 출판사 대표가 우연히 미국 뉴욕에 들렀다가 레이터의 사진에 반한 게 계기였다. 이 출판사가 내놓은 레이터의 사진집 ‘얼리 컬러(Early Color)’는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책이 출간되자 미국이나 영국의 매체들은 격찬을 쏟아냈다. “컬러 사진의 선구자”(CNN)라는 식의 호평이 이어졌다. 그의 컬러 사진엔 절제와 여백의 미가 깃들어 있었다.
‘사울 레이터의 모든 것’ 끄트머리에는 권정민 계원예술대 교수의 글이 등장한다. 레이터가 어떤 사진가였는지 평가한 내용이다. “(레이터의 사진은) 안쪽에서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그의 시선을 그대로 노출시킨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차갑거나 불안하지 않다. 그가 속하지 못한 세계를 향한 냉소도 없다. …회화적인 구도는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레이터는 그만의 방식으로 느긋하게 세상을 읽어낸다.”
박지훈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