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고… 영화 ‘22’ [리뷰]

중국 지역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22명의 이야기를 담은 한·중 합작 다큐멘터리 영화 ‘22’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어릴 때는 기억력이 참 좋았어. 무슨 노래든 한 번 들으면 다 따라 불렀지. 지금은 다 잊어먹었어. 음…. ‘아리랑’이라고 들어봤나?” 한국말을 기억하지 못하는 박차순(중국명 마오인메이·1922∼2017) 할머니의 입에서 익숙한 노랫말이 흘러나왔다.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한국에서 태어나 5세 때 부모를 잃은 박차순 할머니는 18세 되던 해에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갔다. “중국 한커우 공장에 가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았던 것이다. 온갖 고초를 겪은 끝에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몸이 됐다. 전쟁이 끝난 뒤에도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중국에서 양녀를 입양해 살았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국에는 20만명에 달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있었다. 박차순 할머니도 그중 한 명이었다. 2014년 기준 생존자는 단 22명에 불과했다. 영화 ‘22’는 그 스물두 사람의 이야기들을 엮어낸 작품. 개봉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15명이 세상을 떠났고, 현재 7명만이 남아 있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한 영화는 시종 담백한 시선을 유지한다. 극적 표현이나 감정에 호소하는 편집은 단 한 장면도 찾아볼 수 없다. 그저 차분하게 피해자들의 일상을 비추고, 그들의 목소리를 들을 뿐이다. 구태여 어떤 메시지를 강조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과거 기억에 괴로워하는 할머니들의 주름진 얼굴,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자들 옷을 벗기고선 강제로 하라더군. 거부하면 입에다가 형구를 채웠어. 억지로 시키고 안 하면 때렸지. 그렇게 2년을 잡혀 있었어.”(린아이란·1925∼2015) “그때 일본인들은 정말 악랄했어. 안 때린 곳이 없었다니까. …우리 부모님은 내가 죽은 줄 아셨대. 돌아온 걸 보시곤 너무 좋아 우시더라고.”(리아이롄·1928∼2018)

‘22’의 제작 과정이 쉽지만은 않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중국 내의 낮은 인식 탓에 개봉조차 불투명했다. 한국의 위안부 영화 ‘귀향’(2016)의 크라우드 펀딩 사례를 참고해 같은 방식으로 제작비를 충당했는데, 개봉 3주 만에 제작비의 60배가 넘는 1억7000만 위안(약 290억원)을 벌어들였다. 550만명이 이 영화를 봤다.

‘소리굽쇠’(2014)를 만든 한국의 제작사 아시아홈엔터테인먼트가 제작을 맡았다. 연출을 맡은 중국의 궈커 감독은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기 전에 어떻게든 기록으로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삶에서 역사와 인생의 의미를 배울 수 있길 바란다”고 전했다. 세계 위안부 기림일인 오는 14일 개봉. 98분. 전체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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