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남자와 결혼한 지 9년째인 탈북여성 박예영(42·통일코리아협동조합 이사장)씨는 6일 “우리 부부의 일상은 예상치 못한 순간들로 빼곡하다”고 말했다.
‘남남북녀’의 ‘부부싸움’이 대표적이다. “한 번은 둘이 심하게 다툰 적이 있어요. 제가 분을 참지 못하고 ‘이 쌔시개!’라고 했는데 남편이 멀뚱멀뚱 쳐다보고만 있더라고요.”
‘쌔시개’는 북한 말로 ‘미친’을 뜻하는 욕이다. 욕을 했는데도 무슨 말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남편 김승근(36) 목사의 모습에 박씨는 웃음을 터뜨렸다고 한다.
남편 김씨는 광주에서 태어났고 아내 박씨는 함경북도 김책시 출신이다. 박씨는 2002년 북한을 떠나 중국, 태국을 거쳐 한국에 정착했다. 두 사람은 2009년 기독교단체가 주관한 통일비전캠프에서 처음 만났다. 김씨는 당시 강사였던 박씨의 소신 있고 재치 있는 모습에 끌렸다고 했다. 김씨는 박씨를 만나기 위해 매주 광주에서 서울로 올라왔다. 김씨보다 여섯 살 많은 박씨는 나이 차이 때문에 교제를 고민했다. 당시만 하더라도 북한엔 연상연하 커플이 거의 없었다.
박씨는 서로의 몸에 배어있는 남북의 문화 차이 때문에 가끔 거리감이 느껴질 때도 있다고 했다. 특히 명절 때마다 남편 부모님을 뵈러 시댁에 가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북한엔 명절에 이동하는 문화가 없어요. 지역 간 이동할 때는 증명서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누가 결혼하거나 장례를 치르는 등 큰 행사가 있을 때만 휴가를 내고 온 가족이 모이는데, 명절에는 모이지 않아요.”
의사소통 방식에도 차이가 있었다. 김씨는 박씨의 직설적인 말투에 여러 번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김씨는 “남한 사람은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도록 좀 에둘러서 얘기하는 편인데 북에서 오신 분들은 직사포처럼 직접적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 말투가 상처가 됐던 적이 있다”고 말했다.
평창 동계올림픽과 두 번에 걸친 남북 정상회담 등으로 급격히 가까워진 남북 관계에 대한 의견도 말했다.
박씨는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만 하더라도 남한 사람들이 ‘어? 우리랑 똑같이 생겼네’라고 할 정도로 북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가 없었어요. 그러나 평창올림픽 때 남북 교류가 본격화되면서 서로의 문화에 대해 생각해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박씨는 “제 주변엔 ‘이제 오랜 분단을 끝내고 통일이 오려나 보다’라며 좋게 말해주는 분들이 많다”고 전했다.
김씨는 숙명여대 앞에서 '아리랑노점 숙대점' 컵밥 가게를 운영 중이다. 종업원들도 북한 출신 청년들이다. 김씨는 “예전엔 손님들이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북한 청년들을 어색해했는데 남북관계가 좋아진 뒤 인식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박씨는 남편과 함께 자신의 고향 김책시에 가보는 게 꿈이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구글 지도에서 고향을 검색해 보면 흐릿하게 나왔어요. 남북 정상회담 이후 혹시나 해서 다시 찾아봤더니 고향의 바닷가에 있던 학교 사진이 선명하게 20장 정도 있더라고요. 통일이 돼서 남편과 함께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고향에 가는 게 소원이에요.”
글·사진=김지애 기자 amo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