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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작’ 황정민 “연기 관성에 자괴감, 초심으로 돌아가” [인터뷰]

8일 개봉하는 실화 바탕의 첩보 영화 ‘공작’의 주연배우 황정민. 그는 “여름 시즌에 걸맞은 화려한 액션이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 관객 분들은 실화 영화를 좋아하시니까, 그리고 황정민을 좋아해주시니까, 그걸 믿고 간다”고 웃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영화 ‘공작’의 한 장면. 리명운(이성민)이 박석영(황정민)의 옷깃에 배지를 달아주고 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산 넘어 산이었어요. 자괴감이 들었죠. 계속 바닥을 치니까. 내가 고작 이것밖에 안 되나, 그런 복합적인 감정이 들더라고요.”

20년을 훌쩍 넘긴 연기 내공. 두 편의 1000만 영화(‘국제시장’ ‘베테랑’)를 보유한 흥행 파워. 그런 황정민(48)의 입에서 자책 어린 고백이 쏟아져 나왔다. 영화 ‘공작’(감독 윤종빈)이 그에게 안긴 압박감이 얼마간 짐작되는 순간이었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황정민은 ‘공작’을 찍으며 한계를 마주했다고 털어놨다. 그는 “작품을 하다 보면 관성이 생기기 마련인데 이번에 내 패가 다 드러났다는 느낌을 받았다”면서 “솔직해지는 방법밖에 없었다. ‘나 못한다. 이것밖에 안 된다.’ 감독과 동료 배우에게 도움을 청해 조금씩 채워 나갔다”고 말했다.

‘공작’은 1997년 대선을 앞두고 고(故) 김대중 당시 대선후보를 낙선시키기 위해 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한 북풍 공작 ‘흑금성 사건’을 모티프로 한 첩보극이다. 극 중 황정민은 흑금성이란 가명을 쓰는 북파 공작원 박석영 역을 소화했다.

“첩보물에 대한 환상 같은 게 있잖아요. 마냥 재미있겠거니 생각했다가 된통 당했죠. 이 작품은 기존 첩보물의 틀에서 벗어나 있으니까. 더구나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 때문에 뭔가를 추가적으로 만들어낼 수도 없는 노릇이었어요. 정공법으로 갈 수밖에 없었죠.”

흔히 첩보물이라 하면, 두뇌싸움과 액션이 치밀하게 구성된 장르를 예상하게 된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액션이 완전히 배제됐다. 대신 인물과 인물이 펼치는 심리전, 그 속에서 대사와 대사가 맞부딪히며 빚어내는 서스펜스가 자리한다. 이른바 ‘구강 액션’이다.

“감독님이 ‘모든 대사가 다이내믹한 액션처럼 느껴졌으면 좋겠다’고 주문하셨어요. 말은 쉽죠(웃음). 막상 해보니 대사를 완벽하게 외워도 상대 배우와 주고받을 때 쉽사리 긴장감이 실리지 않는 거예요. 애를 많이 먹었죠.”

특히 극 중 북한 외화벌이의 총책인 조선노동당 대외경제위 처장 리명운(이성민)과 함께 김정일(기주봉) 국방위원장을 대면하는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NG를 얼마나 냈던지(웃음). 현장의 분위기와 공간이 주는 위압감에 얼어서 입이 안 떨어지는 거예요. (이)성민이 형이랑 그랬어요. 별거 아닌 것 같은데 어쩜 이렇게 힘드냐고.”

올 초 연극 ‘리차드 3세’ 무대에 선 것도 ‘공작’의 여파였다. 황정민은 “‘공작’이 끝나고 굉장히 힘들었다”면서 “내가 아직 많이 모자라는 걸 깨달았다. ‘나 이러다 큰일 나겠다’ 싶더라. 그래서 다시 연극을 하게 된 것”이라고 얘기했다.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마음이었어요. 셰익스피어 작품을 택한 이유이기도 했죠. 대사가 굉장히 어렵거든요. 장단음까지 정확하게 구분해야 돼요. 연습을 하면서 ‘맞아, 나 옛날에 이렇게 했었지. 그래서 연극판에서 잘한다는 얘기를 들었지’ 싶더라고요. 큰 공부를 한 거죠.”

‘리차드 3세’ 이후에는 오랜만에 휴식기를 갖고 있다. 초등학생 아들을 학원에 바래다주는 게 요즘 가장 중요한 일과다. 배우로서 지나온 발자취도 되짚어보고 있다. ‘한국영화엔 황정민밖에 안 나오느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꾸준히 ‘다작(多作)’을 해 온 그는 “후회는 없다”고 했다.

“나를 지겨워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거예요. 처음엔 속상하기도 했는데, 지금은 크게 동요하지 않아요. 생각해보면 감사한 일이더라고요. 수많은 배우들 중 그렇게 주목받고 많은 얘기를 듣는 이는 몇 없으니까(웃음).”

차기작은 우주를 배경으로 한 SF영화 ‘귀환’이다. ‘국제시장’(2014)을 함께한 윤제균 감독의 신작으로, 오는 12월 촬영에 들어간다. “처음 하는 장르라 너무 궁금해요. 우주복을 입은 내 모습이 저도 상상이 안 돼요(웃음). 또 재미있게 찍어봐야죠.”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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