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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김명호] 해편



1993년 3월 8일 낮, 이경재 청와대 공보수석이 예정에 없던 긴급 브리핑을 했다. 김진영 육군참모총장과 서완수 기무사령관 해임. 두 사람은 당시 군내 육사 출신 사조직 하나회의 정점이었다. 그야말로 뒤통수를 치는 ‘깜놀’ 뉴스였다. 군 인사는 6월에 예정돼 있었다. 4월 1일에는 수도방위사령관과 특수전사령관이 전격 경질됐다. 만약 쿠데타가 일어나면 순식간에 서울을 장악할 부대의 지휘관들이다. 이어 15일 군단·사단장급 인사가 단행된다. 김영삼 대통령은 하나회 중심의 정치군인들을 이렇게 전광석화처럼 제거한다. 기무사령관 등의 해임이 하나회 척결의 신호탄이고, 결국 1년에 걸친 숙군(肅軍) 과정의 시작이었다는 걸 사람들은 나중에야 알게 된다. 그렇게 전격적으로 해야 할 만큼 군은 건드리기 버거운 존재였다.

‘YS대세론’으로 차기 대통령의 확신이 선 92년 여름부터 YS와 핵심 측근들은 대선(92년 12월) 전후의 쿠데타를 의식했다. 하나회 척결 구상은 그때부터 있었으며, 군부 동향을 후보 시절부터 비밀리에 정기적으로 보고 받고 점검했다고 훗날 한 측근은 털어놓았다. 실제로 92년 7∼8월 무렵 육사 17기 중심의 친위 쿠데타설이 유포됐었다.

26년이 흐른 2018년, 문재인 대통령은 기무사령부의 해편(解編·풀어서 엮는다)을 지시하고, 기무사령관을 경질했다. 기무사령부를 해편할 사령관으로 YS와 마찬가지로 비육사 출신을 전격 기용했다. 지난해 촛불 정국 때 민주당 인사는 친위 쿠데타 의혹을 제기했고, 기무사 해편의 이유도 계엄령 검토 문건과 관련돼 있다. 실행 의도가 담겼는지는 수사중이니 나중에야 밝혀질 일이다. 그런데 집권 세력은 실행 의지가 있고, 배후에는 알자회나 이런저런 인연이 얽힌 군 내외 일정한 세력이 있다고 보는 듯하다. 대통령의 관련 언급에서 그런 생각의 일단이 읽힌다.

국방부가 6일 기무사를 없애고 다음 달 1일 국군안보지원사령부를 창설한다고 발표했다. 속도감이 있는데 정교한 계획이 있는지 모르겠다. 해편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군의 전반적인 주류 교체로 확산될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지금 정권은 전 정권보다 오히려 기무사의 기능이 더 필요하다고 볼 수 있다. 군을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능 말이다. 청와대와 국방장관이 기무사 개편 내용을 놓고 이견을 보였던 건 아마 이 부분일 것이다. 해편 결과로 나타날 내용과 추후 인사를 보면 문재인정권이 군을 어떻게 관리할지 알 수 있겠다.

김명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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