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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여성 시위와 ‘진보되지 않는 덕’



“무식한 여자라야 덕(德)이 있다.” 중국 성인들이 했다는 이 말은 조선에도 반영됐다. 중국 국민당 정부의 천재적 외교관으로 불리던 천유런 어머니도 변호사 출신의 잘난 아들이 사생아 출신 고학력 여성과 결혼하려 들자 이 말을 들이댔다. 덧붙이길 “온종일 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온갖 소리 해대며 종알거리면 너만 불행해진다”고 했다. 김명호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중국현대사 글에 나오는 일화다.

소중화를 자처했던 조선이었으니 당연히 여자는 무식이 덕이었다. 조선 중기,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 양반이었고 나머지는 신분이랄 것도 없었다. 천한 것들에게 배움이란 양반에게 방해가 될 뿐이었다. 그러니 양반 여식이라 하더라도 무식이 덕이란 인식이 강했다. 1902년 조선에 온 선교사 헐버트 박사의 연구 자료에 따르면 한문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있는 양반 여식은 1%였다. 중류층이더라도 언문(한글을 속되게 이르던 말)을 깨친 여성은 30%에 지나지 않았다. 이 여성들에게 문해 교육을 시킨 건 삼종지도(三從之道)의 자세를 담은 삼강행실도를 읽게 하기 위해서였다.

근대식 여성교육은 미국 선교사 스크랜턴의 어머니 메리 스크랜턴으로부터 시작됐다. 그는 1896년 본국에 보낸 선교 보고에 ‘이 나라의 급속한 진보를 위해서는 여성과 소녀들이 꼭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 적었다. 지금의 이화여대 설립자가 스크랜턴 부인이다.

최초의 여학생들은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의 12세 미만 아이들이었다. 이 연령이 넘으면 조혼을 하기 때문에 학생으로 받을 수도 없었다. 학교 보내는 부모는 늙은 외국인 부인에게 딸을 팔았다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또 서양인들이 딸들을 살찌게 해서 끝내 종으로 판다는 얘기도 돌았다. 1920년 한 신문은 덕성기독학교에 다니는 한 여학생의 할아버지가 병환으로 눕게 됐는데 그 이유가 손녀딸이 학교에 다녀 귀신이 노했기 때문이라는 내용을 보도했다. 점쟁이 점괘로 결국 소녀는 학교를 포기했다.

여성가족부의 ‘2018 통계로 보는 여성의 삶’ 보고서를 보면 여성의 대학 진학률은 72.7%로 남성(65.3%)보다 7.4% 포인트 높다. 하지만 전체 여성 인구 가운데 고용률은 50.6%로 남성 고용률(72.1%)보다 20.4% 포인트 낮다고 했다.

지난 토요일 광화문 ‘몰카 사건 편파 수사 규탄’ 여성 시위에 7만여명이 몰렸다. 이 여론에는 ‘진보되지 않는 덕’을 강요하는 우리 사회의 의식이 반영돼 있다고 본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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