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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비자림로



넉 달 전 화장품업체가 월급 860만원짜리 ‘알바’를 모집했다. 제주도에서 두 달간 산림보호 활동을 하며 숲을 홍보하는 일이었다. 20대 청년 한 명을 선발해 숲 파수꾼이란 직함과 함께 비자림으로 보냈다. 제주 고유목인 비자나무 녹나무 황칠나무에서 추출되는 원료가 이 회사 화장품에 사용된다. 청년은 숲의 구석구석을 돌아보고 울창한 아름다움을 영상에 담으며 1720만원을 벌었다. 업체는 숲의 소중함을 알리기 위해 이 돈을 썼다고 한다.

비자림은 세계 최대의 단일 수종 숲이다. 500년 넘은 비자나무 2800그루가 하늘을 뒤덮고 있다. 이곳에서 차를 타고 서쪽으로 30분쯤 가면 사려니숲길이 나온다. 졸참나무 서어나무 때죽나무 등이 서식한다. 비자림은 천년의 숲, 사려니는 신성한 숲이란 별칭을 갖고 있다. 두 숲을 잇는 1112번 도로는 비자림로라고 불리는데 2002년 건설교통부가 전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로로 선정했다.

이 길이 당시 대통령상을 받은 것은 양옆에 빽빽이 뻗어 있는 삼나무 덕이었다. 40m까지 자라는 삼나무는 바람 때문에 제주에서 살게 됐다. 돌·여자와 함께 바람이 많은 제주의 사람들은 오래전 이 키다리 나무를 들여와 방풍림으로 심었다. 기대에 부응하듯 쑥쑥 자라서 토종식물을 보호하는 파수꾼처럼 두 숲 주변에 높다랗게 늘어서 있다. 이런 나무가 지난 2일부터 하루 100그루씩 잘려나갔다.

제주도는 비자림과 사려니숲길 중간의 비자림로 3㎞ 구간을 왕복 4차로로 확장하려 한다. 이를 위해 6개월간 거목 2400그루를 베어내는 톱질이 시작됐다. 삼나무가 아름다워 관광객이 많이 찾는 길인데, 차가 늘었다고 삼나무를 잘라내고 있다. 고유 수종이 아니니 베도 된다는 해명은 차라리 황당하다. 제2공항 건설에 맞춰 확장 구간을 늘려갈 거라고 한다. 새 공항이 난개발을 부르리란 우려가 현실이 되려는 듯하다. 비판 여론에 공사를 일시 중단했다는데, 제발 더 이상 나무를 자르지 말라. 제주는 느림과 여유가 매력인 곳이다. 길이 좀 막혀도 얼마든지 참을 테니까.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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