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이 패션에 눈을 뜨면서 구두 선택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패션의 완성은 구두’라는 공식은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에게도 해당된다. 스스로 꾸미기 좋아하고 자신에게 아낌없이 투자하는 ‘그루밍족’들이 구두에 눈을 돌리는 것은 당연하다.
스타일의 완성을 추구하는 남성들이 크게 늘어나자 국내 제화업계들도 고급화 구두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켤레당 가격이 30만∼150만원을 웃돌지만 매년 두 자릿수 이상의 판매 신장률을 기록할 정도다. 금강제화가 운영하는 최고급 수제화 브랜드 ‘헤리티지’는 원하는 구두를 바로 구입할 수 없을 만큼 인기가 높다. 악어가죽을 사용한 구두의 경우 한 켤레당 가격이 300만원을 웃돌지만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탠디(TANDY)도 최근 고급화 라인 ‘블랙라벨’을 론칭했다. 블랙라벨은 이탈리아에서 직수입한 피혁과 부자재, 다양한 특피 소재를 사용해 고객 발에 맞춰 주문 생산한다.
수입 고가 브랜드의 남성 구두 브랜드들이 적지 않지만 국내 브랜드 구두가 사랑받는 것은 남성들이 멋과 함께 착화감을 중시하기 때문으로 보인다. 탠디 관계자는 12일 “블랙라벨은 발 모양을 고려하지 않은 유럽 수입산 구두에 비해 한국인 발에 맞아 오래 신어도 편안하다”고 강조했다. 한국인은 서양인에 비해 발볼이 넓고 발등이 높은 편이다.
젊은 그루밍족들을 위해 국내 제화업계들은 다가오는 F/W(가을·겨울) 시즌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와 가심비(가격 대비 심리적 만족감)를 모두 담은 구두를 내놓을 계획이다.
금강제화는 가성비를 중시하는 소비자를 위해 기존 ‘헤리티지’ (맨 위 여러 켤레 사진) 제품 5000번대 라인을 리뉴얼한 제품인 ‘N.FIVE’를 얼마 전 출시했다. 구두 바닥에 홍창(가죽창)대신 고무창을 사용해 오래 신어도 발이 느끼는 피로감이 적다는 것이 장점이다. 소재나 원부자재 모두 최상급 이태리 수입원단을 사용해 고급스러움을 살렸다. 디자인은 플레인 토, 스트레이트 팁, Y팁, 로퍼로 구성됐으며 가격은 35만원이다.
가심비를 찾는 소비자라면 ‘헤리티지 세븐·S’도 눈여겨 볼 만하다. 헤리티지 세븐·S은 기존 ‘헤리티지 세븐’보다 고급 소재를 사용하고 날렵한 디자인을 적용했다. 홍창은 독일 ‘요한 렌덴바흐’사의 것을 사용했다. 구두 모양은 젊은 층 수요에 맞게 슬림하게 만들면서도 구두 안쪽 공간은 넉넉하게 확보해 착화감도 살렸다. 스트레이트 팁, 윙팁, 플레인 토, 페니 로퍼, Y팁 등 7가지 모델의 가격은 59만원이다.
소다도 지난해 6월 이탈리아에서 100% 생산하는 고급화 라인 ‘블랙 에디션’(아래 사진)을 내놓고 올가을·겨울을 맞아 고급화 구두를 선보인다. 스트레이트 팁, 싱글 몽크 스트랩, 플래인 토를 각각 39만8000원에 판매한다. 탠디도 스트레이트 팁, 테슬로퍼, 더블 몽크 스트랩을 각각 43만8000원, 47만8000원, 32만8000원에 내놨다.
고급화에 대한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가치가 있다고 여기면 비싼 값도 마다하지 않는 ‘가치소비’가 소비자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올해 헤리티지 판매량은 지난해보다 10%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9년 2만7500켤레에 불과했던 헤리티지 판매량은 지난해 7만켤레를 돌파했다. 금강제화 전체 매출 중 고급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25%에 달한다.
이춘범 신세계백화점 본점 남성팀장도 “패션에 관심이 많은 남성 고객들이 발끝까지 관심을 갖게 되며 구두 매출도 좋아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며 “국내 고급화 구두의 약진은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라고 말했다.
올가을·겨울은 캐주얼하면서도 단정한 느낌을 줄 수 있는 ‘세미 포멀 스타일’ 구두가 유행할 것으로 업계는 전망했다. 세미 포멀 스타일 구두는 단정한 느낌을 주면서도 소재나 컬러를 변경해 격식을 낮춰 겉보기에는 구두와 캐주얼화 경계선에 있는 구두이다. 멋쟁이로 거듭날 수 있는 간단한 팁도 곁들였다. 금강제화 관계자는 “평소 본인이 즐겨 입는 코트와 액세서리 색상 등을 고려해 구두와 매칭하면 스타일링이 한층 더 살아날 것”이라고 말했다.
손재호 기자 sayh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