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션 프로그램이 다시 기지개를 켜고 있다. 지금도 엠넷 ‘프로듀스 48’이 많은 관심을 받으며 경합의 열기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번에는 좀 다르다. 한동안, 혹은 잠시 생존 경기에서 손을 뗐던 지상파 3사가 새로운 경연의 장을 구축하고 있다. 한 번씩 고배를 마셨던 이들이 칼을 갈고 중흥을 도모하려는 모양새다.
세 곳 중 KBS가 선봉에 선다. KBS는 다음 달 7일 10대들이 댄스 배틀을 펼치는 ‘댄싱하이’를 선보인다. 그다음은 SBS로, 유명 인사와 이름이 덜 알려진 가수가 한 팀이 돼 승부를 겨루는 ‘더 팬’을 10월 공개할 예정이다. MBC는 보컬 랩 퍼포먼스 세 부문에서 최고의 10대를 뽑아 아이돌 가수를 만드는 ‘언더나인틴’을 11월 방송한다. 이로써 하반기 브라운관 한편에서는 거대한 가무의 물결이 펼쳐지게 됐다.
노래와 춤이 만발하니 즐겁게 느껴져야 할 텐데 달갑지만은 않다. 2009년 엠넷 ‘슈퍼스타K’가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뒤 콘테스트는 예능 프로그램의 으뜸 소재로 등극했다. 지상파에 이어 종합편성채널이 가세했고, 케이블방송도 거듭 새 프로그램을 생산하면서 1년 내내 오디션이 끊이지 않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일부 시청자들은 식상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과밀 시장에서 이목을 끌려다 보니 ‘고음 놀음’, 출연자 간의 갈등을 부각하는 연출, 외모가 준수한 참가자 모집에 중점을 두는 경향이 심화됐다. 모두 말초적인 재료다. 오디션 프로그램은 암암리에 가창에 대한 편견, 쉽게 이름을 알리는 술수, 외모지상주의를 퍼뜨렸다.
2016년 60세 이상의 고령 여성들을 랩에 뛰어들게 한 JTBC ‘힙합의 민족’ 첫 번째 시즌을 제외하면 그동안 오디션 프로그램들은 대체로 참가자의 나이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엠넷 ‘고등래퍼’가 10대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얻으면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하는 서바이벌의 사업성이 여전히 좋다는 게 타진됐다.
‘댄싱하이’와 ‘언더나인틴’은 이에 영향을 받았을 듯하다. 청소년들이 각축을 벌이는 화면에는 청춘의 패기, 취미와 이상에 대한 열정 같은 아름다운 면모만 담기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치열함, 반복되는 시합에 따른 고단함, 실수나 능력의 한계로 인한 좌절도 나타난다. 일련의 모습을 통해 비슷한 또래 어린 학생들은 무한 경쟁을 당연시하는 태도를 배우며, 패배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과 절망감을 학습할 공산이 크다.
어떤 이에게 오디션 프로그램은 꿈을 이루거나 스타의 반열에 이르는 지름길이 된다. 안타깝게도 이 은혜를 누리는 출연자는 소수일 뿐이다. 대부분은 방송용 소모품으로 쓰이는 데 그친다. 그럼에도 방송의 힘이 막강하기에 아이돌 가수, 연예인이 되기를 갈망하는 많은 청소년이 모진 대결에 몸을 던진다. ‘댄싱하이’에는 무려 3100여명의 지원자가 몰렸다.
오디션 프로그램의 여러 문제점을 일거에 뜯어고치기란 사실 어렵다. 이 볼썽사나운 인자들이 대중의 눈길을 사기에도 좋아 만성이 됐기 때문이다. 자극성은 경쟁 쇼의 필수영양소로 자리 잡았다. 다만 꿈을 좇는 이의 절실함과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위치를 이용해 참가자들을 기만하는 사악한 일은 없어야 한다. YG엔터테인먼트가 제작하고 JTBC에서 방송한 ‘믹스나인’은 올해 1월 종영하면서 보이 밴드 제작을 결정했다가 몇 달 뒤 돌연 취소했다. 참가자들이 약 석 달 동안 들인 노력은 어이없게 허사가 됐다. 남의 열정을 파는 데 급급하고, 이것이 득이 안 된다고 그들을 내팽개치는 대회는 없느니만 못하다. 앞으로 나올 오디션 프로그램의 제작진들은 책임감도 되새겨야 할 것이다.
<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