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부터였다. 가수 윤종신(49)이 ‘월간 윤종신’이라는 타이틀로 매달 신보를 발표하기 시작한 것은. 당시만 하더라도 사람들은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없었다. 전성기가 끝난 40대 가수의 호기로운 이벤트 같은 거라고 여겼다. 하지만 윤종신은 우직하게 이 프로젝트를 밀어붙였고, 급기야 월간 윤종신은 최근 ‘100호’를 맞았다. 수많은 노래가 명멸하는 가요계에서 한 뮤지션이 8년 넘게 하나의 프로젝트를 이끌며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한 것이다.
월간 윤종신을 시작하기 전, 윤종신이 마지막으로 발표한 정규 음반은 2008년 11월 출시한 11집 ‘동네 한 바퀴’였다. 애틋한 발라드와 산뜻한 댄스 음악이 뒤섞인 앨범이었는데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즉흥여행’이나 ‘내일 할 일’ 같은 곡이 잠깐 주목받은 게 전부였다.
당시 윤종신은 다양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를 뮤지션보다는 입담 좋은 방송인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그런 상황에서 윤종신은 2010년 3월 ‘먼슬리(monthly) 프로젝트’를 발표했다. ‘막걸리나’와 ‘그대 없이는 못살아’가 담긴 싱글 음반을 내놓으며 매달 신보 발매를 공언한 것이다. 그리고 이게 바로 월간 윤종신의 시작이 됐다. 윤종신은 2012년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월간 윤종신의 ‘탄생 비화’를 공개했다.
“예전에는 2년 작업해서 앨범 발표하면 3개월 활동하곤 했다. 2년간 준비한 앨범이 실패하면 앞이 막막했다. 그래서 한 달마다 곡을 발표하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다.”
월간 윤종신에 실린 곡들은 알음알음 입소문을 타면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본능적으로’ ‘말꼬리’ ‘오르막길’ ‘지친 하루’ ‘탈진’ 등이 뒤늦게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윤종신은 “월간 윤종신은 정규 앨범 제도 안에서는 만들지 못하는, 그때그때 만들고 싶은 노래를 마음껏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라며 “‘100’이라는 숫자에 거창한 의미는 부여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초심을 잃지 않겠다는 마음이 음악에도 담겼으면 한다”며 “앞으로도 월간 윤종신을 통해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월간 윤종신은 단순히 매달 발표되는 윤종신의 신보만을 가리키진 않는다. 그는 2012년부터 동명의 온라인 매거진을 발행하고 있다. 월간 윤종신 음반 재킷을 디자인한 미술가들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월간 윤종신의 핵심은 음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윤종신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장르의 음악을 선보였다. 전매특허라고 할 수 있는 발라드는 물론이고 댄스 록 힙합 등 다채로운 장르의 곡이 월간 윤종신을 통해 탄생했다. 이 프로젝트는 ‘뮤지션 윤종신’의 실험실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동윤 음악평론가는 “과거 윤종신은 발라드 가수라는 인식이 강했는데, 월간 윤종신을 통해 젊은층이 좋아할 만한 곡도 잇달아 내놓았다”고 했다. 이어 “음악적으로 굉장히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뮤지션 윤종신’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냈다”고 평가했다.
그동안 월간 윤종신에 참여한 뮤지션은 한두 명이 아니었다. 윤상 이적 김연우 박정현 등 베테랑 가수들이 힘을 보탰다. 정준일 지코 민서 같은 후배 뮤지션들도 참여했다. 월간 윤종신이 인기를 끌자 프로듀서 용감한형제, 개그맨이면서 가수 활동도 하는 유세윤 등이 비슷한 프로젝트를 선보였다. 이 때문에 ‘월간 가수’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김교석 대중문화평론가는 “윤종신은 음반보다는 음원을 통해 음악을 즐기는 시대가 시작되자 달라진 환경에 발 빠르게 적응한 케이스”라며 “무엇보다 월간 윤종신을 통해 성실하게 8년 넘게 매달 신곡을 발표한 근면성은 높이 평가할 만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