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션 김민규(47)의 음악 세계는 크게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그가 이끄는 밴드 델리스파이스의 음악. 1997년 결성된 이 팀은 ‘챠우차우’ ‘항상 엔진을 켜둘게’ ‘고백’ 같은 곡들을 히트시켰고, 한국 모던록을 대표하는 밴드로 자리매김했다.
그의 음악 세계를 규정하는 또 다른 코드는 ‘스위트피’라는 활동명으로 선보인 솔로 음반들이다. 스위트피의 음악은 델리스파이스의 그것과는 결이 달랐다. 부드러웠고 그윽한 분위기를 띠었다. 주로 잔잔한 통기타 반주 위에 서정적인 노랫말이 포개진 포크 음악이었다.
김민규는 최근 새로운 솔로 음반을 발표했다. 그런데 신작에선 스위트피라는 활동명을 사용하지 않고 ‘김민규’라는 자신의 본명을 정면에 내세웠다.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서울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민규는 “두 개의 세계(델리스파이스와 스위트피)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느낌에서 벗어나려면 새로운 출구를 만들어야 했고, 다른 활동명을 짓기보단 본명을 사용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그가 발표한 음반은 ‘서니 사이드(Sunny Side)’라는 제목이 붙은 미니앨범이다. 총 6곡이 담겼다. 눈길을 끄는 건 ‘여름 3부작’으로 명명된 곡들이다. 각각 1∼3번 트랙을 장식한 ‘여름은 모른다’ ‘지난여름은’ ‘옥탑의 늦은 밤’에선 여름의 분위기가 강하게 묻어난다.
“여름 3부작은 지난해에 만든 곡들이에요. 원래 지난여름에 발표하려고 했는데 녹음을 끝내고 나니 가을이더군요. 음악이 별로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다시 들어보니 괜찮더라고요(웃음). 올여름엔 발표하자고 생각했고, 이번 음반에 싣게 된 거예요.”
음반명을 양지(陽地)라는 의미가 담긴 서니 사이드로 지은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따뜻한 음악을 선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의 설명처럼 신보에선 전작들보다는 따뜻함이 느껴지긴 한다. 하지만 특유의 서늘한 감성도 깃들어 있다. 그는 “계속 시도하다 보면 언젠가는 밝고 따뜻한 나만의 음악을 완성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미소를 지었다.
김민규는 그동안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밴드로, 솔로로 많은 음반을 발표했고 영화나 드라마 음악도 많이 만들었다. 레이블 ‘문라이즈’를 설립해 운영하기도 했었다. 이 레이블은 재주소년 마이앤트메리 토마스쿡 같은 실력파 인디뮤지션을 다수 배출했다.
뮤지션으로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김민규는 “음악을 만들고 있을 때 가장 재미를 느낀다”고 말했다. “누군가는 음반이 완성됐을 때, 혹은 공연을 할 때 보람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저는 노래를 만드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요. 꾸준히 작업을 해서 다음에는 김민규라는 이름을 내건 정규 음반을 발표하고 싶어요.”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