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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가혹한 8년’ 구제금융 졸업, “그래도 악몽은 계속된다”



그리스가 21일 0시(현지시간)를 기해 8년 만에 구제금융 체제를 졸업했다. 국가부도 위기에서 벗어났지만 그리스는 아직 갈 길이 멀다. 막대한 부채를 갚고 경쟁력을 높여야만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유럽안정화기구(ESM)는 20일 성명을 통해 “그리스가 2015년 8월에 합의한 3차 구제금융안에 따른 개혁조치를 마쳤다”면서 “ESM 구제금융안에 따른 더 이상의 계획이 없다. 그리스는 2010년 이후 처음으로 자신의 발로 서게 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리스 정부는 “그리스에 새로운 새벽이 왔다”며 구제금융 졸업을 환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그리스는 국가부도 직전까지 몰리자 2010년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에 긴급자금 지원을 요청했다. 국가신용 등급이 떨어져 시장에서 자체적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없었던 탓이다. 이에 따라 국제 채권단은 2010년 5월, 2012년 3월, 2015년 8월 3차례 총 2890억 유로(약 370조원)의 구제금융을 지원했다. 세계금융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구제작업이었다.

구제금융의 대가는 혹독했다. 그리스는 국제 채권단 요구에 따라 강도 높은 구조개혁과 긴축정책을 이행해야 했다. 2010년 이후 지금까지 그리스 연금 및 복지 급여는 70%, 임금은 20% 정도 삭감됐다. 반면 세금은 가파르게 올라 부가가치세는 24%나 올랐다. 금융위기 이전과 비교할 때 그리스의 평균소득과 고용은 각각 33.6%, 17.6% 감소했다. 당연히 투자와 소비 모두 위축되면서 경제 규모도 25%가량 축소됐다. 그리스의 실업률과 청년실업률은 각각 유로존 최고 수준인 20%, 40%까지 치솟았다.

구제금융 체제에 지친 그리스 국민은 2015년 1월 총선에서 긴축정책 철폐를 천명한 급진좌파정당 시리자를 선택했다. 그리스 역사상 최초로 탄생한 좌파 정부를 이끌게 된 알렉산더 치프라스 총리는 구제금융 조건 재협상을 요구하며 채권단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하지만 부도가 눈앞에 다가오자 그리스는 결국 백기를 들었다.

8년간의 가혹한 구제금융 체제에서 그리스 경제는 회생 조짐을 보이고 있다. 2016년과 2017년 연속 국내총생산(GDP)의 4%에 육박하는 재정 흑자를 기록했고, 경제도 올 1분기까지 5분기 연속 플러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IMF는 그리스의 GDP 성장률을 올해 2.0%, 내년 2.4%로 각각 전망하고 있다. 2013년 28%로 정점을 찍은 실업률도 지난 5월 19.5%로 집계돼 2011년 이후 처음으로 20%를 밑도는 등 고용지표도 개선될 기미를 보인다. 3대 국제 신용평가사는 올 들어 그리스의 신용등급을 모두 상향 조정했다.

하지만 그리스 경제가 정상화되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 GDP의 180%에 이르는 국가부채가 문제다. 더욱이 구제금융이 공짜가 아닌 만큼 그리스는 앞으로도 빚을 갚기 위해 국제 채권단의 감시 아래 더욱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채무 관리를 위해 2020년까지 GDP의 3.5% 수준으로, 이후 2060년까지는 GDP의 2.2%의 재정 흑자를 유지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 국민의 연금은 내년부터 최대 18%까지 추가로 삭감되며, 2020년부터는 소득세 면세기준이 연봉 6000유로(780만원) 이하로 하향 조정된다. 공공부문 민영화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그리스 정부는 지난해 14개 공항을 독일의 공항 운영기업 프라포트에 13억9000만 달러에 매각하는 등 알짜 공기업을 팔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선 무리한 긴축 개혁안이 결국 그리스의 경제 회복을 어렵게 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지금과 같은 높은 세율과 정부 주도 경제정책으로는 앞으로도 해외 투자자금의 유입이 어렵기 때문이다. 투자가 되지 않으면 경제의 성장동력은 떨어진다. 실제로 그리스의 실업률은 감소했지만 올 1∼2월 신규 일자리의 55%가 파트타임 근무였다.

무엇보다 앞으로도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그리스 국민의 불만이 커지고 있다. 현지 일간 타네아는 지난 18일자에 ‘구제금융은 끝나지만 악몽은 계속된다’는 제목을 통해 구제금융 졸업에 대한 그리스인들의 정서를 요약했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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