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하주원] 통계는 통계일 뿐



누구나 무엇을 생각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해서 자신이 속한 집단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우울증을 예로 들면, 여자가 남자보다 우울증에 더 많이 걸리는 까닭은 여성호르몬의 영향이 무엇보다 크다고 알려져 있다. 물론 사회적인 젠더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경우가 남자에 비해 더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많은 연구들이 단순한 우울감이 아니라 우울증 발병에는 생물학적인 요소, 즉 호르몬의 영향이 더 크다고 보고 있다. 또한 이민자로 살아가는 소수민족, 독신으로 사는 60대, 교대근무를 하는 의사나 간호사 등 우울증에 걸릴 확률이 높은 집단이 있다고 밝혀졌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갖고 여자는 더 감정 기복이 심하다거나, 이민자는 우울하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수만명 이상의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분석했고, 학자들이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명확한 연구 결과조차도 통계 분석을 통한 결과일 뿐이다. 그럴 확률이 높다는 것이지 무조건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물론 그런 요소로 인해 선입견을 가지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수백 개의 연구에서 흡연을 하면 폐암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는데 “시골에 우리 할머니 사시는 동네에 만날 담배 피우면서도 90세까지 장수하는 분도 있더라.” 이런 개인적 경험의 논리로 맞선다면 더 이상 토론이 어렵다.

극히 개인적인 사례를 가지고 일반화하는 것도 문제지만, 어떤 사람이 속한 집단을 통해 개인 의견을 어림짐작하는 것도 문제다. 내가 여성이라고 현재의 페미니즘이 갖고 있는 일부의 문제에 대해서까지 무조건 동의하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들이 젠더 고정관념을 공고히 하는 존재라고 오히려 배척하거나, 성범죄에 대해 무고죄 자체의 존재가 필요 없다는 부분에 동의하지 않는다. 요즘 의식 있는 여성이면 마치 그런 의견에 동의하는 것을 전제로 대화를 시작하는 사람도 많다. 통계는 통계일 뿐, 통계적으로 어떤 의견을 가질 확률이 높은 집단에 속한다고 해서 꼭 그것을 동의할 의무는 없을 텐데….

하주원(의사·작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