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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전정희] 108년 전 공무원 시찰 일기



“지금에는 (공무원의) 월급과 사무비용을 가구에 분배하여 백성에게 부담하게 하였은 즉 백성의 옷을 입고, 백성의 식량을 먹는 것과 같은 것이라… 정신을 기울여 업무에 힘쓰라.” 1911년 8월 7일 경남 거제군수 이원호가 관내 10개면 면장과 공무원에게 한 훈유 기록이다. 1910년 5월 부임한 이원호는 “겨울이면 칡뿌리로, 가을이면 보리로 연명하고 움막에서 생활하는 가난을 벗어나보자”며 “지식을 경쟁하고 부강을 이루기 위한 시찰단을 뭍으로 보내겠다”고 밝혔다.

이에 면장 등 20명으로 도내 통영 마산 창원 진주 등을 시찰하는 이른바 ‘관광단’을 꾸렸다. 8월 11∼19일 진행된 시찰은 요즘으로 치면 국회 지방의회 지자체의 해외연수와 다름없었다. 그들은 ‘거제관광단 시찰일기’를 남겼다. 2014년 향토연구가 김백훈(전 경남산업고 교장)씨 등이 번역한 이 자료를 보노라면 100여년 전보다 퇴행한 오늘의 현실을 보게 된다.

시찰단은 오전 9시 일정을 시작해 오후 7시쯤 공무를 마무리했다. 방문자나 접객자나 시찰 내내 흐트러짐이 없다. 세금으로 외유성 관광을 하는 요즘과 사뭇 대조된다. 8월 13일 하루 일정은 이렇다. 오전 9시 진주 선화당에서 관찰사 황철의 도정 브리핑을 받는다. 이어 물품진열관을 방문해 식산(산업) 현황을 둘러보고 경찰서로 가 전염병 발생에 대비한 보고체계 교육을 받는다. 다음은 공립학교를 방문, 교사 신축 방법 등을 배운다. 여자잠업전습소와 종묘장에 대한 설명도 듣는다. 목화시험장에도 들러 해충 제거 작업도 배운다.

오후에는 촉석루에서 격검회(무술시범)를 보고 상업회의소에 들러 증기방아 작동과 서양신발 제조 과정을 견학한다. 촉석루 만찬에서 기관장 등과 어울려 정보를 교환한다. 전 과정은 시간대별로 발언자와 발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겼다. 다음날 신마산 시찰 후 ‘문명 진보’에 충격 받은 그들 중 10명이 손수 단발을 하기도 한다. 그들이 본 신마산의 공립학교, 새끼줄직조소, 기독교회당, 창신학교, 정차장, 신(新)우시장 등은 당장 돌아가 적용해야 할 행정이었다. 그때 거제 인구는 4만3000여명이었다.

오는 27일 수도권 한 지자체 의회가 북유럽으로 떠나는 스케줄 표를 받았다. 17명 연수단의 주마간산 일정은 둘째 치고 일정 내내 배낭여행자들이 선호하는 관광지를 둘러보면서 이를 ‘관광산업 벤치마킹’이라고 강조해 놨다. 시간대별 기록과 발언을 남겨 놓으라면 볼만할 것이다.

전정희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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