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 당국이 올해 12월 발간되는 ‘2018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를 삭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올해 초부터 급변한 남북 관계, 북한과의 비핵화 및 종전선언 협상 상황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보수 진영은 실질적인 북한의 군사적 위협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이유로 ‘북한=적(敵)’ 개념 변경에 일제히 반발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22일 “2018 국방백서 내용 중 ‘국방 목표’를 담는 부분에 나오는 북한과 북한군에 대한 개념 규정을 현재와 다른 문구로 대체하는 안을 검토 중”이라며 “대체 문구가 확정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 국방부가 2년마다 내는 국방백서 최신판은 ‘2016 국방백서’다. 2016 국방백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등 대량살상무기와 사이버 공격, 테러 위협을 적시하며 ‘이러한 위협이 지속되는 한 그 수행 주체인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했다.
이 문구에서 ‘적’ 표현을 빼고 ‘군사적 위협’ ‘현존하는 위협’ ‘잠재적 위협’ 등으로 대체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노무현정부 시절 발간된 ‘2004 국방백서’에 쓰인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 대량살상무기 등은 직접적 군사위협’이라는 문구가 일부 반영된 안이다. 첨예한 군사적 대치 상황을 가정한 적 개념을 다소 완화시키되 여전한 북한의 군사 위협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문구가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적’ 개념을 변경하는 것은 올 들어 북한의 군사적 도발이 중단된 점을 감안한 것으로 분석된다. 비무장지대(DMZ) 내 경계소초(GP) 시범 철수 등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는 정책이 추진되는 데다 북·미 간 비핵화 협상, 종전선언 논의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과거의 적 개념을 그대로 유지하기는 어렵지 않겠느냐는 논리다.
다만 변수는 북한의 비핵화 진전 여부다. 북한 핵·미사일 개발 프로그램이 중단되지 않고 비핵화 조치가 지지부진할 경우 북한은 적이라는 개념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다. 국방부는 “국방백서의 북한군 표현에 대해선 충분한 검토를 거쳐 12월 발간 시 결정할 예정”이라는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현재 2018 국방백서 초안은 북한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한 부분만 빼놓고 거의 마무리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북한은 주적’이라는 표현은 김영삼정부 때인 1995년 처음 등장했다. 북한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0년 6월 남북 정상회담 이후 나온 ‘2000 국방백서’에 포함돼 있는 주적 표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노무현정부 들어 국방백서의 주적 표현이 처음 삭제됐다. 이명박정부 출범 첫 해인 ‘2008 국방백서’에도 주적 표현이 없었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 이후 발간된 ‘2010 국방백서’부터 ‘2016 국방백서’까지 ‘북한 정권과 북한군은 우리의 적’이라는 문구가 유지돼 왔다.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야당은 반발했다. 윤영석 한국당 수석대변인은 “노무현정부 때 주적 개념을 삭제했지만 평화가 오기는커녕 북한은 천안함·연평도 도발과 핵 개발을 본격화했다”며 “북한의 도발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적 개념을 삭제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김철근 바른미래당 대변인도 “북한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로드맵이 전혀 제시되지 않고 있는 상황에서 적 개념을 삭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김경택 심우삼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