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완식의 우리말 새기기] 어느 쪽에도 알맞지 않은 ‘어중되다’



“버스를 타기도 그렇고, 택시를 타기도 좀 어중띠네. 걸어가자.” “저녁을 먹기에 시간이 어중뗘서 일꾼들은 짐을 푼 뒤 쉬고 있었다.”

대개 사람들은 ‘어떤 것이 이도 저도 아니어서(일정한 기준이나 정도에 넘거나 처져서) 어느 것(쪽)에도 알맞지 아니하다’는 뜻으로 말할 때 ‘어중띠다’고 하는데, ‘어중(於中)되다’가 옳은 표현입니다. ‘어중되네’ ‘어중돼서’라고 말해야 합니다. ‘어중간(於中間)’에도 이런 의미가 포함돼 있습니다.

‘於中’의 於는 ‘∼에(서)’, ‘∼보다’로 해석되는 글자입니다. 옛 사람들이 편지 맨 마지막에 ‘於부산’ ‘於원산’처럼 쓰기도 했는데 ‘부산에서’ ‘원산에서’라는 뜻이지요. 於의 쓰임을 잘 알 수 있는 문장이 있습니다. 靑出於藍 靑於藍(청출어람 청어람, 줄여서 ‘청출어람’이라고도 함). 원래는 쪽(藍, 잎을 염료로 씀)에서 뽑아낸 푸른 물감이 쪽보다 더 푸르다는 뜻입니다. 제자나 후배가 스승이나 선배보다 나음을 비유할 때 쓰지요. ‘순자(荀子)’에 나옵니다. ‘청출於람’의 於는 ‘∼에서’, ‘청於람’의 於는 ‘∼보다’의 뜻으로 쓰인 것입니다.

꼴도 보기 싫은, 폭군 같은 폭염이 드디어 슬슬 짐을 싸는 것 같습니다. 선선해지면 여름옷, 가을옷 가려 입기가 좀 어중되겠으나 그간 더위에 몸과 마음을 덴 걸 생각하면 외려 즐거운 고민이겠지요. 갈바람 솔솔 불어서 이불 덮고 폭 자는 꿈을 꾸어 봅니다.

서완식 어문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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