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회가 2020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약이 돼야 합니다.”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레슬링의 모든 체급 경기가 마무리된 23일(한국시간), 불이 하나둘 꺼져가는 자카르타 컨벤션센터 레슬링 경기장 한쪽 구석에 박치호 한국 대표팀 그레코로만형 감독이 있었다. 그가 열심히 말을 하려 했지만 바람이 빠지는 것 같은 소리만 들렸다. 방금 전까지 선수들의 경기마다 온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기 때문이었다.
박 감독은 “김승학과 김현우는 너무 많이 노출돼 있었다”며 “1대 100으로 싸워야 했던 친구들인데, 앞으로 잘 준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60㎏급의 김승학, 77㎏급의 김현우는 박 감독이 지도하는 그레코로만형에서 한국 선수단에 금메달을 가져다줄 것이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던 ‘간판’이었다. 하지만 모두 충격적인 1라운드 패배를 당했다.
2004 아테네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인 정지현 코치도 비슷한 진단을 내렸다. 정 코치는 “전략이 노출된 느낌을 받았다”며 “예전에는 큰 기술을 성공할 수 있었는데, 패턴을 파악당했다”고 말했다. 맞잡기 싸움을 벌이는 대신 순간적인 타이밍을 잡아 상대를 매트에 눕히던 김승학의 경우, 상대 선수들이 무심코 팔을 길게 뻗지 않으려 애썼다고 한다. 박 감독은 “본인들의 몫이다. 본인들이 꾸준히 극복해야 한다”고 했다.
전략의 노출은 한국 대표팀으로서는 뼈아픈 지적인 ‘노쇠화’와도 연관이 있다. 노재현 코치는 “모든 대회에서 만족이란 없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아시안게임의 입상자들을 보면 22∼25세다. 한국 대표팀은 29∼32세가 많다”고 말했다. 국제대회 경험이 많다는 것은 노련하다는 의미로 통하지만, 그만큼 자신의 기술과 습관을 경쟁자들에게 많이 내보였다는 뜻도 된다.
할 수 있는 세대교체를 뒤로 미뤘던 것도 아니다. 보다 큰 문제는 ‘치고 올라오는’ 후배가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다. 베테랑들은 정당하게 선발돼 힘든 훈련을 극복하고 아시안게임에 진출했다. 무명의 늦깎이였지만 막판 대역전극으로 금메달을 거머쥔 조효철이 대표적이다. 노 코치는 “당장 대체할 수 있는 신예 선수들이 없다는 것이 큰 숙제”라고 말했다.
자신의 장점보다 상대의 장점을 먼저 생각한 경기운영도 되짚어볼 부분이다. 노 코치는 “상대 선수에 대한 비디오를 많이 분석했는데, 그게 오히려 생각을 많아지게 한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대표팀은 자유형 65㎏급의 이승철, 74㎏급의 공병민에 대해서도 내심 금메달을 기대했었다. 두 선수가 결승에 진출하지 못한 데 대해 노 코치는 “자신의 것을 제대로 펼쳐 보이지 못한 듯해 아쉽다. 지도자가 반성한다”고 말했다.
한국 레슬링 대표팀은 금메달 2개로 이번 대회를 마무리했다. 애초 목표는 3개 정도였다. 박 감독은 “감독으로서는 지금 거둔 성적을 50점으로 평가해야 하겠지만, 우리 선수들이 흘린 그 땀에는 200점을 주고 싶다”고 말했다.
자카르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