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측근 인사 2명에 대한 유죄 결정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탄핵론이 다시 수면 위로 부상했다. 트럼프 탄핵론이 11월 중간선거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사로 떠올랐다.
하지만 야당인 민주당이 탄핵 추진을 주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을 하야시킬 만한 ‘스모킹 건(결정적 근거)’이 아직 없는 데다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것도 부담이다. 민주당에서는 탄핵을 밀어붙였다가 실패할 경우 엄청난 역풍이 일어 ‘트럼프 재선’을 막을 수 없게 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퍼져 있다. 탄핵을 추진하더라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의 ‘러시아 스캔들’(미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와 러시아 정부 간 공모 의혹) 수사가 끝난 뒤에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들고 있다.
워싱턴포스트(WP)는 22일(이하 현지시간) 중간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이 탄핵 이슈에 신중을 기하고 있고 오히려 공화당이 지지층 결집을 위해 탄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공세를 취해야 할 야당은 정작 탄핵에 소극적이고, 반대로 수세에 몰린 여당이 탄핵을 선거 이슈화하려는 정반대의 상황이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WP는 민주당 후보들이 탄핵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도 조심스럽다고 지적하면서 이는 2016년 대선에서 ‘트럼프 때리기’에만 집중하다가 패배한 것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또 민주당은 중도 표심을 끌어오기 위해 탄핵보다는 경제 등 민생 문제에 집중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애리조나주 투손에 출마할 앤 커크패트릭은 “여기는 워싱턴과 다르다”며 “유권자들은 러시아 스캔들이나 성추문 입막음용 돈보다 의료보험, 안전문제, 등록금 대출 등 생활 이슈에 더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탄핵 절차가 진행되면 탄핵이 블랙홀이 돼 트럼프 대통령을 공격할 호재마저 빨아들일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이런 상황에서 공화당이 오히려 탄핵 이슈에 불을 붙이며 민주당에 역공을 가하고 있다. 존 코닌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당은 2016년 대선 결과에 만족하지 않고 있다”며 “그들은 이번 중간선거에서 대선 결과를 뒤집으려는 모든 시도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판 ‘대선 불복’ 주장을 꺼내 든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변호인인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은 한술 더 떠 “이번 선거는 ‘탄핵이냐, 탄핵이 아니냐’의 선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화당이 자충수가 될 수도 있는 탄핵 이슈를 꺼내 든 것은 지지층의 분노를 끌어내 투표장으로 이끌려는 의도라는 게 미국 언론의 분석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거들고 나섰다. 트럼프 대통령은 23일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일 잘하는 대통령을 무슨 수로 탄핵하겠다는 건지 모르겠다”면서 “만약 내가 탄핵 당한다면 시장이 무너지고 모두가 가난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오랜 개인 변호사였던 마이클 코언이 본인 지시를 받아 성추문 논란 여성 2명에게 입막음용 돈을 전달했다고 폭로한 것과 관련해 “나는 나중에 알았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돈의 출처와 관련해 “그것은 선거캠프에서 나오지 않았다”며 “그 돈은 나한테서 나왔다”고 주장했다. 대선 자금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 자신의 돈이었다고 거듭 해명한 것이다.
CNBC방송은 2016년 대선 당시 코언이 트럼프 선거운동의 일환으로 익명의 기술회사에 5만 달러(약 5600만원)를 지급했다는 사실이 추가로 밝혀졌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이 회사가 어떤 회사였는지, 어떤 목적으로 돈을 보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코언이 성추문 입막음용 돈 지급 외에도 트럼프 대통령과 함께 모종의 다른 일들을 했음을 시사하는 증거라고 전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