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출판사 마음산책에서 펴낸 신간을 마주한 독자라면 책장을 넘기다가 이색적인 엽서 한 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의 말’이라는 제목이 붙은 엽서의 앞장엔 책의 표지 사진이, 뒷장엔 200자 원고지로 3∼4매 분량의 짤막한 글이 담겨 있다. 엽서만 봐도 책에 담긴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는데, 편집자가 독자에게 띄우는 편지라고 불러도 무방할 듯하다.
예컨대 마음산책이 최근 내놓은 신간 ‘박완서의 말’을 보자. ‘박완서의 말’은 마음산책이 ‘수전 손택의 말’(2015)을 시작으로 명사들의 빛나는 인터뷰를 갈무리해 펴내는 ‘말 시리즈’의 열 번째 작품이다. 이 책의 ‘편집자의 말’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다.
“(말 시리즈에) 우리나라 인물은 처음인데요, 솔직하고 부드럽되 강단 있는 입말을 오랜만에 번역을 거치지 않고 읽으니 편집자로서는 돋보기안경을 벗고 맨눈을 찾은 느낌이 들어 시원합니다. 무언가 날이 서고 분분한 시절, 어른의 곁이 그립던 참이어서 더욱 그래요.”
그렇다면 이 독특한 프로젝트는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최근 서울 마포구 마음산책에서 만난 이 출판사 관계자들의 설명은 이랬다. 지난 1월 마음산책에서는 ‘마음산책 북클럽’ 회원을 모집했다. 회원이 되면 저자와의 만남을 비롯해 다양한 이벤트에 참여하는 ‘특권’이 주어지니 반응이 대단했다고 한다. 50명을 모집하려 했는데 이틀 만에 300명이 몰렸다.
마음산책에서는 ‘탈락자’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는 엽서를 보냈다. 그런데 이 엽서를 받고 감동했다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독자들이 소소한 엽서 한 장에 큰 기쁨을 느낀다는 걸 알았다. 이런 엽서를 자주 보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편집자의 말’은 출판사들이 신간이 나올 때 온라인서점에 내걸거나 각종 매체 출판 담당 기자에게 보내는 보도자료와는 결이 다르다. 해당 도서의 첫 독자였던 편집자가 느낀 감흥이 생생하게 묻어난다. 편집자들은 “다정하게 쓰려고 노력한다”고 입을 모았다.
이승학씨는 “보도자료가 공적인 메시지가 담긴 설명문이라면 엽서는 편집자의 사심(私心)이 담긴 편지”라고 했다. 최해경씨는 “엽서를 통해 편집자의 진심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최지연씨는 “친구나 가족에게 쓰는 편지라고 생각하면서 ‘편집자의 말’을 쓴다”며 “보도자료를 쓸 때보다는 훨씬 더 애정이 가는 작업”이라고 했다.
‘편집자의 말’은 3000부 가량 찍는 초판 1쇄에만 담긴다. 올해 이 엽서가 포함됐던 신간은 모두 12권. 엽서를 소장하거나 모으는 독자가 있다면, 이 독자는 마음산책의 책을 사랑하는 사람일 가능성이 적지 않다. 정 대표는 “마음산책엔 정말 고마운 독자들”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이어 “독자에게 ‘당신을 생각하며 책을 만들었습니다’라는 느낌을 주고 싶다”며 “앞으로 ‘편집자의 말’은 엽서가 아닌 다른 형태로 진화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