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을 전격 취소한 이유가 북한이 보낸 적대적 내용의 편지 때문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은 특히 편지에서 비핵화 협상이 깨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강경한 입장을 다시 드러내고, 미국도 현재로선 물러서지 않겠다는 입장이어서 북·미 교착상태가 장기화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미 CNN방송은 최근 북한 김영철(사진)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폼페이오 장관에게 보낸 비밀 편지에서 “북·미 협상이 위기에 처해 있으며 협상이 무산될 수도 있다”고 밝혔다고 3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북한은 편지에서 “평화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한 걸음 나아가는 데 있어 미국이 북한의 기대에 부응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아 협상이 진전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북·미 간) 타협이 이뤄지지 않고 초기 협상이 흔들린다면 평양은 핵과 미사일 활동을 재개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지난 24일 편지를 받아 백악관에 가져갔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곧장 ‘이번 방북은 성공하지 못할 것 같다’면서 방북을 취소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수시간 전에 방북 계획을 전격 취소한 것은 전적으로 이 편지 때문이었다고 보도했다.
김 부위원장이 보낸 편지는 시점상 트럼프 대통령이 이달 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친서에 대한 답신 성격으로 볼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 친서에는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 제안과 함께 북한이 비핵화에 진전을 보일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북한은 비핵화 진전이 아닌 미국을 위협하는 편지를 보내 결국 폼페이오 장관의 방북이 무산된 것이다.
서울의 한 외교 소식통은 “전후 사정을 고려하면 북한은 미국이 종전선언 약속을 이행하고 대북 제재를 완화하기 전에는 일방적으로 비핵화 조치를 이행할 수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 같다”며 “이에 화가 난 트럼프 대통령이 방북을 공개적으로 취소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 부위원장 명의로 강경한 내용의 편지가 온 것도 미국을 자극시켰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 정부 내에선 그동안 김 부위원장이 너무 경직돼 있어 말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불만이 팽배해 있었다.
우리 정부도 현 상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있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이날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북·미 초기 협상 과정에서 진통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된다.
한·미는 현 상황을 평가하고 해결책을 도출하기 위해 다음 주 후반쯤엔 북핵 6자회담 수석대표 회담을 가질 것으로 알려졌다. 외교부 당국자는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로 새로 임명된 스티브 비건이 이도훈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과 빨리 만나 협의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고 말했다.
북한 대외 매체인 통일신보는 이날 미군 특수부대가 전남 진도 해군기지와 일본 등에서 대북 훈련을 벌인다는 언론 보도를 언급하며 “미국이 앞에서는 미소 지으며 대화판을 펼쳐놓고 뒤에서는 비밀리에 참수작전 훈련까지 강행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고 비난했다.
권지혜 기자,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