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일본이 미국에 숨기고 지난 7월 베트남에서 비밀 회담을 가졌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2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미국은 일본에 대해 배신감을 느끼고 격분했다고 WP는 전했다. 북·일 접촉이 한반도 정세의 깜짝 변수로 등장한 상황에서 북한 전문매체 데일리NK는 북한이 올해 11월 말 북·일 정상회담을 계획하고 있다고 29일 보도했다.
베트남 비밀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신임을 받는 여성 대남일꾼과 일본 정보수장이 만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을 대표해 참석한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전선책략실장은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을 수행했고,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고위급 대표단의 방남에서는 김 위원장 동생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을 밀착 수행했던 인물이다. 일본에서는 정보기관인 내각정보조사실의 수장 기타무라 시게루 내각정보관이 나섰다. 북한이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이 벽에 막히자 우회로로 일본을 활용한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스가 요시히데(사진) 관방장관은 북·일 비밀 회담에 대해 “코멘트를 피하겠다”고 말했다. ‘예스’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미국은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북·미 협상의 기밀을 꾸준히 일본에 전해줬는데, 일본은 비밀 회담을 감추며 뒤통수를 쳤다는 것이다. WP는 이번 비밀 회담이 냉온탕을 오가는 미·일의 불안한 관계를 보여주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일본도 사정은 있다. 오랜 정치적 숙제인 북한 납치 일본인들의 송환 문제를 미국에 의존해 풀려고 했으나 해결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직접 나섰다는 것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여러 차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일본인 송환을 촉구했으나 만족할 만한 답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대북 해법에 대한 시각차도 미·일 균열의 원인이다. 아베 총리는 북한이 구체적인 비핵화 조치를 취하기 전에 한·미 연합 군사훈련 중단이나 종전선언 합의 같은 선물을 주지 말 것을 요구했으나 철저히 무시당했다고 아베 총리와 가까운 인사가 전했다. 미국은 미국대로 대일 무역적자에 대한 불만이 크다.
북·미 비핵화 협상은 멈춰 섰고, 미·일은 삐걱대는 상황에서 북·일 접촉은 파괴력 큰 변수다. 특히 북한이 일본인 스기모토 도모유키를 구속했다가 추방 형식으로 일본에 돌려보낸 것은 비밀 회담의 성과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비밀 접촉은 북·일 정상회담 설로 이어졌다. 데일리NK는 중국 단둥 지역에 파견된 북한 간부를 인용해 김 위원장이 경제 재건을 목표로 일본과의 관계 정상화에 나섰으며 북한 노동당 중앙위가 비밀리에 북·일 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북·일이 접촉에서 오히려 평행선만 확인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북한이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이미 끝난 일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는 점은 북·일 대화의 걸림돌이다. 북한은 27일에도 일본의 북한 선박 환적 감시 발표에 대해 “일본은 평화파괴 세력의 본색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고 비난하는 등 끊임없이 일본을 비판하고 있다. 아베 총리 입장에서도 자국 여론과 미·일 관계를 감안할 때 북·일 대화라는 위험한 도박을 할 필요가 없다는 얘기가 나온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