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동부의 한 도시에서 극우세력이 주도하는 대규모 반(反)난민 폭력시위가 발생했다. 독일 내 극우세력은 예전부터 구동독 지역을 중심으로 세를 불려왔으나 이번처럼 노골적으로 소요사태를 일으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독일 정부는 불법 집회와 난민 혐오는 용납할 수 없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혔다.
시위는 지난 25일 오후(현지시간) 독일 작센주 켐니츠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에서 비롯됐다. 독일 도이체벨레(DW)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독일 국적의 30대 남성이 거리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됐다. 독일 당국은 용의자 신원과 살해 동기 등 구체적인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용의자가 시리아와 이라크 출신 20대 남성 2명이라는 소문이 소셜미디어를 통해 번지면서 난민 혐오 감정에 기름을 부었다.
이튿날인 26일 극우 극단주의자 800여명이 켐니츠 거리로 나와 시위를 벌였다. 27일에는 규모가 5000명까지 늘어났다. 작센주 바깥에서도 동조자들이 적잖이 가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우리가 국민이다” “국경을 폐쇄하라” “이민자를 쫓아내라” 등 과격한 구호를 외쳤다. 자신들과 외모가 다른 사람에게 폭죽과 돌을 던지는 등 폭력성도 드러냈다.
진보 진영에서도 1500여명이 나와 ‘맞불 집회’를 벌였다. 경찰은 양측이 맞닥뜨리지 않도록 유도했으나 결국 도시 중심부 칼 마르크스 기념비 인근에서 유혈사태가 빚어졌다. 충돌로 시위대 18명과 경찰 2명이 부상을 입었다. 극우 시위대 10명이 법으로 금지된 나치식 경례를 했다가 체포되기도 했다. 이밖에 시위를 마치고 귀가하던 극우 시위대 4명이 시민들에게 집단 폭행을 당해 2명이 병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파악됐다. 난민 반대 시위는 사흘째인 28일에도 이어졌다.
작센주 등 독일 동부는 극우 극단주의, 외국인 혐오 성향이 다른 지역보다 비교적 강하다. 난민 반대단체 ‘페기다(PEGIDA)’의 발상지도 작센주다. 이런 지역 특성 때문에 작센주 인구 400만명 중 비(非)독일계는 17만1000여명에 불과하다. 독일 통일 이후 구동독 지역이 경제적으로 뒤떨어지면서 이런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는 분석도 있다. 독일 극우정당 ‘독일을 위한 대안(AfD)’은 지난해 총선에서 구동독 지역을 기반으로 제3당 지위를 얻었다. 특히 작센주에서는 득표율 1위를 기록했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AfD는 작센주에서 집권 기민당(CDU)에 버금가는 지지를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28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지금 입헌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을 목격하고 있다”면서 “독일에서 혐오가 발붙일 곳은 없다”고 말했다. 기민당 소속인 미하엘 크레치머 작센주 총리는 이민자가 독일인을 살해했다는 소문에 대해 “거짓 주장이 인터넷에 퍼지고 있다”며 부인했다. 극우 단체는 살인 용의자의 인적사항이 적힌 구속영장 문서를 소셜미디어에 유포하기도 했다.
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