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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이흥우] 전직 대통령의 품격



39대 미국 대통령 지미 카터(재임 1977∼81년)는 재임 시 인기가 없었다. 임기 중 발생한 이란 이슬람혁명과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인질사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고,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도 막지 못했다. 임기 내내 초강대국 미국의 자존심을 심하게 훼손했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반대파는 ‘가장 허약한 대통령’이라고 비판의 수위를 높였고 결국 그는 재선에 실패했다.

선거에서 참패한 카터는 알거지나 다름없었다. 고향 조지아로 돌아온 그에게 남은 거라곤 100만 달러가 넘는 빚더미뿐이었다. 그는 저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에 당시의 참담한 심경을 남겼다. “내 뜻과 상관없이 백악관을 떠나야 했을 때 내 나이 겨우 56세였다. 더욱이 세상 사람 절반 이상이 나의 부끄러운 패배를 알고 있다는 사실은 내 실직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농장은 빚이 100만 달러를 넘어 파산위기에 처했다.”

그의 퇴장은 초라했다. 하지만 그의 진가는 퇴임 후 빛을 발한다. 93년 1차 북핵 위기 때 평양을 방문해 김일성 주석을 만나 갈등을 중재했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오슬로 협정을 이끌어내는 등 국제분쟁 해결사로 명성을 떨쳤다. 뿐만 아니라 구순이 넘은 지금까지 35년째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헌신하고 있고, 교회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이런 그에게 2002년이 돼서야 노벨 평화상이 주어진 건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이제 그는 ‘가장 존경받는 전직 대통령’으로 불린다.

우리나라에는 네 명의 전직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재임 중 틈만 나면 국격(國格)을 이야기했다. ‘이팔성 비망록’에 따르면 그는 ‘파렴치한 인간들’ 중 한 사람이다. 나라의 품위를 떨어뜨린 장본인이 자신이면서 국격을 운운했으니 그 평가를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수감 중인 이 전 대통령의 태도는 너무도 떳떳하다.

병을 핑계로 법원 부름에 불응한 전직 대통령이 있다. 평소 골프도 즐겨 치고, 건강에 아무 이상이 없어 보였는데 알츠하이머병에 걸렸단다.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광주지법에서 열린 첫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다. 2013년부터 알츠하이머를 앓아 왔다는 이유에서다. 알츠하이머를 앓으면서 장편의 회고록은 어떻게 썼는지 참으로 궁금하다. 그래도 한때는 대통령들이었는데 행동의 격은 찌질하기 그지없다.

이흥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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