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정권수립 70주년인 9·9절을 앞두고 막바지 열병식 준비에 한창이다. 특히 한·미 정보 당국은 최근 평양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을 수 있는 이동식발사대(TEL)의 움직임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ICBM이 9·9절 열병식에 등장할 경우 이는 종전선언을 끌어내기 위한 대미 압박용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다만 북한이 비핵화 협상뿐 아니라 국제사회 여론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핵 투발 수단인 ICBM을 열병식에 실제 꺼내놓을지는 미지수다.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3일 정례 브리핑에서 9·9절 준비 동향에 대해 “이번이 정권수립 70주년 정주년(5년·10년 단위로 꺾이는 해)이기 때문에 열병식도 준비되는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북한군 무기 중 ‘화성 15형’ ‘화성 14형’은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둔 ICBM이다. 이들 전략무기를 열병식에 내보내는 것은 선(先) 비핵화 조치에 힘을 쏟는 미국에 북한 체제 보장을 위한 종전선언 이행을 먼저 촉구하는 메시지로 판단될 수 있다.

더욱이 9·9절 열병식은 5일 대북 특별사절단 방북과 9월 중순으로 예상되는 3차 남북 정상회담 사이에 열린다. 열병식 규모가 북한의 향후 대미 스탠스를 예측할 수 있는 가늠자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대북 특별사절단 파견과 관련해 “지금은 한반도 평화 정착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며 “북한에 특사를 파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임종석 청와대 비서실장도 페이스북에 “(대북 특사단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조기 방북과 북·미 간 비핵화 대화의 진전을 위한 마중물 역할을 충실히 해 달라”고 적었다.

북한은 대미 압박뿐 아니라 대내 결속 측면에서 대규모 열병식을 진행할 수 있다. ‘정의의 보검’인 핵무력 완성을 거듭 과시하는 의미뿐 아니라 김정은 우상화와 체제선전 수단으로 열병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노동신문은 3일자 정세논설을 통해 “모든 나라와 민족에게 다 적용될 수 있는 만능 처방이란 있을 수 없다”며 북한 체제의 자주성을 강조했다. 노동신문은 자주성을 견지하지 못한 나라들은 예외 없이 ‘분쟁의 소용돌이’에 말려들었다는 논리를 폈다.

다만 ICBM이 끝내 열병식에 나오지 않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은 그동안 신형 전략미사일을 열병식에서 먼저 보여준 뒤 시험발사하는 패턴을 보여 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화성 15형을 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이미 선언했기 때문에 새로운 미사일을 보여줄 필요성이 떨어진다는 관측이다. 게다가 이번 열병식의 ‘메인 이벤트’는 평양 능라도 5·1경기장에서 진행되는 집단체조와 카드섹션 등 대규모 공연이다. 군 관계자는 “한·미가 현재 열병식 준비 동향에 대해 긴밀히 들여다보고 있다”고만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