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갯벌, 농지 100배 가치 수산물·관광·바닷물 정화 등 복합 기능
내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신청키로
간척·매립 탓 22% 넘게 줄자 복원 주력… 개발서 보전으로 갯벌 정책 바뀌어
습지 보호지역 대폭 확대… 서울 면적 2배 추가
갯벌이 다시 태어나고 있다. 산업화 시대에 메워야 할 대상으로만 여겨지던 갯벌은 최근 보전해야 할 중요한 자원으로 떠올랐다. 정부는 습지보호지역을 대폭 확대하는 등 갯벌 보호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내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도 신청하기로 했다. 남은 과제는 단순히 갯벌을 보전하는 차원을 벗어나서 갯벌이 우리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 수 있도록 제대로 활용하는 일이다.
‘농지의 100배’ 가치 지닌 갯벌
갯벌을 보전해야 하는 이유나 필요성은 갯벌의 경제적 가치만 봐도 명확히 드러난다. 2012년 시행된 ‘2단계 연안습지 기초조사’ 보고서를 보면 갯벌 1㎢에서 파생되는 경제적 가치는 63억1000만원에 이른다. 한국의 전체 갯벌면적이 2487.2㎢인 점을 감안하면 총 가치는 약 1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갯벌은 바지락 낙지 등의 수산물 생산기능, 생태관광과 연계한 여가 제공기능, 바닷물 정화기능, 철새 등의 서식처 제공기능을 복합적으로 갖고 있다. 과학학술지 네이처는 1997년에 갯벌의 경제적 가치가 1㎢당 99만 달러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를 게재했다. 이는 농경지의 100배, 숲의 10배에 달한다. 갯벌을 메워 농지나 산업용지로 쓰던 과거 개발정책이 ‘보전’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전환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의 서해안과 남해안에 펼쳐진 갯벌은 북유럽의 바덴해(Wadden Sea)와 함께 세계 5대 갯벌로 분류된다.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지만 저어새 등 멸종위기에 놓인 수많은 생물이 서식하고 있어 국제적으로도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한국의 갯벌은 호주와 시베리아를 오가는 철새들의 중간 기착지 역할까지 도맡고 있다. 해양수산부 명노헌 해양생태과장은 7일 “종 다양성과 생태계 유지라는 측면에서 보면 한국 갯벌은 철저히 보전해야 할 소중한 자원”이라고 강조했다.
서울 면적 2배 보호습지 지정…세계유산 신청
사실 한국은 갯벌을 간척·매립하는데 주력했다. 산업화 시대에는 더 그랬다. 1987년부터 2013년까지 간척·매립 등으로 사라진 갯벌은 전체의 22.4%(약 716㎢)나 된다. 한번 훼손된 갯벌은 되살리기 어렵다. 해수부가 2010년부터 ‘역(逆)간척’이라 불리는 갯벌 복원사업을 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복원한 갯벌은 1.08㎢에 불과할 정도다. 이 때문에 정부는 2001년부터 습지보호지역을 지정해 무분별한 개발을 막는 등 남은 갯벌 보존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해수부는 지난 3일 기존 습지보호지역을 대폭 확대했다. 기존에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갯벌의 면적은 79.62㎢였다. 이를 1265.46㎢로 넓혔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추가 지정된 갯벌은 서울시 면적(605㎢)의 배에 달한다.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되면 관련법에 따라 건축물이나 인공구조물 신축, 광물 채굴, 동식물 경작·포획·채취 등을 제한한다. 생계를 위한 지역주민의 ‘맨손 어업’ 정도만 허용된다.
정부는 한발 더 나아가 갯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다. 신청 결과는 2020년에 나올 전망이다. 지금까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갯벌은 바덴해가 유일하다. 해수부 강용석 해양환경정책관은 “한국 갯벌의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갯벌 활용법 고민해야 할 때
그러나 갈 길이 멀다. 정부의 갯벌 사업은 ‘관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내년 해양보호구역관리 예산으로 배정된 37억6600만원도 관리체계 구축 및 지원, 계획수립 등에 집중돼 있다. 명 과장은 “생태계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 안에서 갯벌을 관광산업 등과 연계해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 등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했다.
해수부는 독일의 랑어욱섬을 사례로 든다. 바덴해 연안에 위치한 랑어욱섬에는 약 200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1923년 시작된 간척사업으로 섬이 황폐화됐었지만 86년부터 간척사업을 중단하고 제방을 터 갯벌 생태계를 복원했다. 이 갯벌을 보러 여름이면 랑어욱섬을 찾는 관광객 수만 하루 평균 10만명을 웃돈다. 지역경제의 99%가 관광산업에서 나올 정도다. 갯벌 관광으로 랑어욱섬은 독일 북부지역에서 가장 부유한 곳이 됐다. 네덜란드의 오스트스켈드 배리어, 미국의 볼사치카 보호구역도 갯벌 복원과 생태관광 활성화를 동시에 성공시켰다.
정부는 내년 말까지 5년 단위로 관리계획을 수립할 방침이다. 보호지역별로 생태자원을 발굴하고, 해양생태계 보전을 바탕으로 창출되는 경제적 이익을 지역주민이 공유하는 ‘선순환 관리구조’를 담을 계획이다.
세종=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