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들이 동남아시아로 이어지는 ‘해상 머니로드’ 장악에 나섰다. 포화상태인 안방을 벗어나 ‘기회의 땅’을 차지하려는 경쟁이 치열하다.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까지 경제영토를 확장한다는 문재인정부의 ‘신(新)남방정책’은 이런 흐름에 불을 지폈다. 올해 국내 은행권의 글로벌 순이익(해외에서 벌어들인 순이익)이 1조원을 돌파하며 역대 최고치를 기록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5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국내 은행의 해외진출 국가(39개국) 중 절반 이상(20개국)이 아시아지역 국가다. 전체 해외 점포(185곳) 가운데 아시아지역 점포는 129곳이나 된다. 국내 은행권은 동남아시아를 중심으로 해외 영업망을 확장하는 특징을 보이는 것이다.
해외 진출에 속도가 붙으면서 4대 은행(KB국민·신한·우리·KEB하나은행)이 거둬들인 글로벌 순이익은 최근 3년간 평균 7658억원에 달한다. 같은 기간 4대 은행이 벌어들인 전체 평균 순이익(5조4000억원)의 14% 수준이다. 4대 은행은 올해 상반기에 글로벌 순이익만 5272억원을 올렸다.
은행들의 ‘동남아시아 시장 공략법’은 조금씩 다르다. 신한은행은 베트남에서 ‘외국계 1위 은행’으로 자리매김했다. 베트남을 발판으로 일본 중국 홍콩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등을 잇는 ‘아시아 금융벨트’를 구축할 계획이다.
우리은행은 최근 캄보디아 금융회사인 ‘비전펀드 캄보디아’를 인수했다. 베트남에도 영업점 6곳을 개설했다. 우리은행은 413곳인 해외 영업점을 연말까지 500곳으로 늘려 글로벌 네트워크를 갖출 예정이다.
KEB하나은행은 ‘현지화’를 무기로 인구 세계 4위 인도네시아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현지 지점 60곳의 직원 99%가 현지인이다. 현지 고객 비중도 90%에 육박한다. 2016년 동남아시아 시장에 뛰어든 KB국민은행은 소매금융, 마이크로 파이낸스를 앞세워 영업망을 강화하고 있다.
동남아시아는 글로벌 대형 은행들도 군침을 흘리는 시장이다. 높은 경제성장률, 낮은 고령화 등을 바탕으로 발전 가능성이 높다. 일본계 은행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고 있다. 일본 내 1위인 미쓰비시UFG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4개국과 200개 이상의 파트너십 논의를 벌이고 있다. 중국 정보통신(IT) 대기업인 알리바바, 텐센트 등도 동남아시아 결제시장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국제금융센터 주혜원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내 은행들도 동남아시아에 단순하게 점포를 설치하는 게 아니라 현지통화 예금·수탁 등의 영업을 하는 현지화 전략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리스크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주 연구원은 “최근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으로 동남아시아지역에서 외국자본 유출과 통화가치 절하가 우려된다”며 “태국 필리핀 미얀마 등의 정치적 불안정성도 장애물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