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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당-태원준] 디지털 독재



노르웨이 국부펀드(GPFG)는 올해 대한해운과 영국 BAE시스템 등 9개 기업을 투자 대상에서 제외했다. 대한해운은 환경 피해를, BAE시스템은 핵무기 생산 관여를 문제 삼았다. GPFG는 1118조원을 운용하며 9000개 기업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윤리위원회를 두고 기업을 심사해 환경, 인권 등 기준에 미달하면 투자를 철회한다. 담배회사 석탄기업 무기업체 등 지금까지 200곳 이상을 배제했다.

가장 많은 돈을 투자한 대상은 애플과 구글이다. 각각 8조원과 6조원이 넘는다.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등 글로벌 IT 기업이 투자액 상위 10곳에 다수 포함돼 있다. 올 초 주주총회 시즌에 미묘한 상황이 벌어졌다. GPFG는 여러 의결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구글이 책정한 임원 연봉을 너무 많다며 반대하고, 아마존이 임명하려는 이사를 부적절하다고 반대했다.

GPFG는 투자 기준인 윤리적 경영의 범위를 넓혀가는 듯하다.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는 공룡기업들을 견제하고 나섰다는 인상을 준다. 이런 움직임은 IT 기업 내부에서도 꿈틀대고 있다. 구글이 중국 정부의 검열을 수용하는 검색엔진을 개발하려 하자 직원들은 지난달 연판장을 돌렸다. 이 프로젝트의 철회를 경영진에게 요구하는 공개서한에 1400명이 서명했다.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제한한다는 이유에서였다.

구글은 지난 6월 미국 국방부와 함께 진행하던 메이본 프로젝트를 접었다. 인공지능(AI) 기술로 킬러 드론의 성능을 향상시키는 일인데, 직원 3100명이 전쟁산업에 발을 디뎌선 안 된다며 반대 성명을 냈다. 실리콘밸리에선 요즘 이런 일이 잇따른다. 아마존 직원들은 빅브러더를 경계하며 안면인식 기술을 수사 당국에 팔지 말라 했고, 마이크로소프트 직원들은 정부의 이민규제 정책에 협조하지 말라고 했다.

유발 하라리는 신간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서 디지털 독재의 출현을 경고했다. “봉건시대 핵심 자산은 토지였고 산업시대엔 공장이었다. 미래에는 데이터를 가진 자가 권력을 쥘 것”이라고 했다. 데이터를 차지하려는 경쟁은 이미 시작됐다. 우리 개인정보는 IT 기업 서버에 속속 저장되고 있다. 그것의 권력화를 복잡한 이해관계의 정치인이 막아주진 못할 것이다. 선한 자본과 내부자들의 견제에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을까.

태원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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