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총회 ‘남·북·미 3자 종전선언’ 끝내 무산

이달 말 미국 뉴욕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3자 정상이 한국전쟁 종전선언을 하는 방안이 무산됐다. 남북은 그러나 한·미 내부 반대세력을 겨냥해 종전선언은 선언적 의미에 불과할 뿐 주한미군 철수 등 안보지형 변화와는 무관하다고 강조하며 연내 도출 의사를 재확인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과 미국을 잇달아 방문한 뒤 연말쯤 종전선언 도출을 추진할 것으로 관측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6일 방북 결과 브리핑에서 “유엔총회에서 남·북·미 정상회담은 실현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남·북·미 정상회담 추진을 위한 여건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는 것으로 준비 중”이라고 설명했다. 북·미 협상이 난항에 빠진 상황에서 이달 내 종전선언을 이끌어낼 정도로 상황을 반전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정 실장은 종전선언에 대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생각을 묻는 질문에 “종전선언은 정치적 선언이고, 관련국들의 신뢰를 쌓기 위한 첫 번째 단계라고 생각한다. 북한도 이런 판단에 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도 “한·미 양국에서 일부가 ‘종전선언을 하면 한·미동맹이 약화된다’거나 ‘주한미군이 철수해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데 종전선언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밝혔다고 정 실장이 전했다.

남북은 종전선언을 비핵화 작업 본격화를 위한 출발선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미국 내 대북 강경파는 종전선언에 합의하면 대북 군사옵션을 잃게 될 것이라고, 국내 보수세력은 한·미동맹 및 대북 군사적 억지력 약화를 우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종전선언이 북·미 협상의 최대 변수로 떠오르자 남북 최고위급 인사들이 한목소리로 정치적 선언임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종전선언은 한반도 비핵화의 입구에 해당하고 완전한 비핵화가 이뤄지는 시점에 평화협정을 맺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내 종전선언 추진 의사를 밝힌 문 대통령은 정상외교를 통해 남·북·미 정상 간 합의를 이끌어낼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우선 이달 18일 2박3일 일정으로 평양을 방문해 김 위원장을 만나 비핵화를 위한 진전된 조치를 요구할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이 미국이 요구했던 핵시설 리스트를 내놓거나 이에 긍정적인 의향을 내비친다면 문 대통령도 미국을 설득할 명분을 얻을 수 있게 된다. 문 대통령은 평양에서 돌아온 직후 유엔총회 참석차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다. 문 대통령은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앞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고 북한의 진전된 입장을 전달하고 상응하는 보상조치의 필요성을 설득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수락한다면 종전선언의 8부 능선을 넘게 된다.

남·북·미 정상이 합의하더라도 중국이 남아 있다. 중국은 종전선언에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치고 있지만 미·중 간 무역 분쟁이 변수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방북 취소 사실을 트위터로 전하면서 “우리가 무역 문제에서 중국에 강경한 입장을 보이고 있어서 나는 중국이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비핵화 과정에서 도움을 줄 것이라고는 믿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은 최근 북한이 강경한 태도로 돌아선 배경에 중국의 주문이 있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국 변수 관리도 종전선언 도출의 또 다른 과제다.

강준구 기자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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