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사회의 대북제재 해제’라는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한반도에 새로운 경제지도가 펼쳐진다. 개방 이후 빠른 속도로 성장한 베트남식 경제 개발모델도 불가능하지 않다.
전력망·철도·도로 등 사회간접자본(SOC)과 광물 개발, 신규 산업단지 구축 등 남북의 동반성장 기회가 무한하게 열린다. 전문가들은 북한 시장 개방을 ‘새로운 성장엔진’이라고 꼽았다. 다만 낙관론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북한 시장이 활짝 열려도 그 과실을 미국 중국 등 주변 열강이 가져갈 수 있다. 한국이 중심에 서려면 점진적이고 능동적인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학교 부총장은 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빌딩 컨벤션홀에서 열린 국민미래포럼에 제1 주제발표자로 나서 남북 경제협력의 ‘기회’와 ‘준비’를 역설했다. 양 부총장은 “북한의 비핵화가 완성되고 북한이 정상국가가 된 이후의 경제협력은 양과 질 측면에서 지금과 비교되지 않는 수준일 것”이라고 밝혔다.
양 부총장은 대북제재 해제에 따른 상황 변화를 4가지 단계로 나눴다. 시작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5가지 대북제재 결의안 해제다. 이 단계에서는 중단된 금강산관광,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할 수 있다. 이후에는 미국의 움직임이 가늠자다.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지정 해제, 국제금융기구 원조 금지 철회, 전략물자 통제 완화, 북한산 물품에 대한 고관세 부과 완화·해제 순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양 부총장은 “논란 여지는 있지만 북·미 국교 정상화가 실현되면 북한은 연평균 10% 이상의 경제성장률을 오랫동안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각 단계에 맞춰 남북 경협의 영역도 넓어진다. 최우선 순위는 전력이다. 양 부총장은 “전력에 이어 무너진 제조업 기반, 특히 화학·철강과 같은 소재산업의 협력을 원할 것”이라며 “과학기술과 금융도 북한에서 많이 고민하는 부분”이라고 진단했다.
북한의 건설·서비스업 수요는 ‘블루오션’이다. 국내에서 해외로 이전한 기업의 ‘유턴’을 촉발할 가능성도 높다. 규제로 신기술 구현에 제한을 받는 한국과 달리 신기술을 곧바로 적용해 볼 수도 있다.
이미 민간에서 장기적인 남북 경협 전략을 세우는 기업도 등장하고 있다. 양 부총장은 “국내 굴지의 기업에 강연을 가봤더니 10명 정도로 구성된 북한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져 있었다. 10년을 바라보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그러나 양 부총장은 한국에 ‘경협의 열매’가 집중될 것이라는 기대감에 대해 우려를 표시했다. 당장 미국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지난 5월 자국의 민간기업이 북한에 투자할 수도 있다고 언급했었다. 중국 일본 유럽연합(EU)도 북한 시장 공략에 적극적으로 뛰어들 것으로 보인다. 양 부총장은 “상황이 잘 풀리면 북한이 주도권을 쥐게 되고 한국은 경쟁 국면에 놓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렇다면 한국이 어떻게 해야 우위를 차지할 수 있을까. 양 부총장은 ‘철저한 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퍼주기’ 논란을 불렀던 인식의 전환부터 선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바라는 방향성을 능동적으로 파악하라고 주문했다. 양 부총장은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남북 정부와 민간이라는 ‘삼두마차’가 각자 어떤 역할을 맡을지 차분하게 전략을 짜고 준비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