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김명민(46)이 소화하지 못할 장르는 없다. 연기력에 있어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가 아닌가. 그런 가운데서도 유독 사극은 그에게 맞춤옷처럼 느껴진다. 그의 안정적인 대사 톤과 절도 있는 몸짓이 사극 특유의 맵시를 한껏 살려준다고나 할까.
사극 출연작이 많은 건 아니다.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KBS2·2004) ‘육룡이 나르샤’(SBS·2015), 영화 ‘조선명탐정’ 시리즈(2011, 2015, 2018) 정도가 전부다. 그럼에도 ‘사극 전문 배우’ 이미지가 강한 건 이들 작품에서 보여준 존재감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오는 12일 개봉하는 ‘물괴’(감독 허종호)가 기대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물괴’는 중종 22년, 괴이한 짐승 물괴가 출몰하자 이를 이용해 민심을 어지럽히려는 자들과 그를 막으려는 자들의 대립을 그린다. 극 중 김명민이 연기한 전 내금위장 윤겸은 충직한 부하 성한(김인권), 외동딸 명(이혜리), 무관 허 선전관(최우식)과 함께 수색대를 꾸려 물괴를 쫓는다.
다른 사극과의 차별점은 크리처(CG로 구현해낸 생명체)를 전면에 등장시켰다는 점이다. 최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김명민은 “가장 큰 걱정은 ‘주인공 물괴가 어떻게 구현되느냐’였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 공포감 있고 혐오스럽게 나와 다행”이라며 “물괴가 연기를 너무 잘해서 내가 꿀리는 느낌도 들더라”고 웃었다.
“솔직히 내 영화 평가에 그리 후한 편은 아니에요. 근데 ‘물괴’는 추석에 볼 오락영화로 꽤 괜찮은 거 같아요. 역사적 사실을 기반으로 어느 정도 무게감을 가져가면서 그 위에 오락적인 요소들을 적절히 배합했죠. 추석영화는 무엇보다 재미가 있어야 하거든요. 안 그럼 가족들 데리고 갔다 욕먹을 수 있으니까(웃음).”
크리처물은 김명민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도전하며 사는 게 재미있지 않냐”고 말문을 연 그는 “제작진이 2∼3년 전부터 준비해 온 프로젝트다. 난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며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위한 모험이었다. 결과가 어떻게 되든 그 노력에는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촬영 당시에는 블루스크린 위에서 물괴의 형상을 상상해가며 연기해야 했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 호흡을 맞추기란 영 녹록지 않았다. “물괴와 일대일로 싸우는 장면에선 정말 민망했죠. 생각해보세요. (물괴에게 맞고) 혼자 날아가서 ‘으윽’ 신음하다 다시 몇 바퀴를 구르고…. 미친 척하고 뻔뻔하게 연기했죠(웃음).”
김명민은 “CG 완성도와 별개로 일단 드라마를 탄탄하게 만드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그러기 위해선 주연배우 네 명이 하나의 호흡을 보여줘야 했다. 각자 개성대로 따로 놀면 관객의 집중도가 떨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쉽진 않았지만 나중에는 네 명이 한 명인 듯 연기하는 경지에 이르렀다”고 흡족해했다.
특히 극 중 부녀로 호흡을 맞춘 이혜리(아이돌그룹 걸스데이 멤버 혜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배우로서의 태도와 자세를 갖췄다는 게 그의 말이다. “주연배우가 해야 하는 일은 연기만이 아니에요. 현장을 살피고 챙기는 것도 주연배우의 몫이죠. 그건 연륜이 쌓이면서 알게 되는 건데, 혜리는 벌써 그걸 하더군요. 현장에 대한 애정이 있는 거죠.”
차기작은 이미 정해졌다. 다음 달 ‘장사리 9.15’(감독 곽경택·김태훈) 촬영에 들어간다. 한국전쟁 당시 인천상륙작전 성공을 위해 양동작전으로 진행된 장사상륙작전을 소재로 한 영화. 앞서 할리우드 여배우 메간 폭스가 종군기자 역에 캐스팅돼 화제를 모았다.
“폭스씨 덕분에 나까지 이슈가 돼 깜짝 놀랐다”는 너스레로 운을 뗀 김명민은 “한국영화가 세계적인 수준이 됐기에 할리우드 배우들도 관심을 갖는 것 같다. 긍정적인 변화가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해외 배우들과 작업할 기회가 많아졌으면 한다”고 전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