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자극할라’ 북 9·9절 열병식 ICBM 없었다

북한 평양에서 9일 정권수립 70주년 열병식이 열리고 있다. AP뉴시스
 
북한은 9일 조선인민공화국 창건70주년을 맞아 평양에서 대규모 군대 퍼레이드를 벌이고 있다. AP뉴시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9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창건70주년 행사에서 중국 리잔수 상무위원장과 참석해 잡은 손을 들어 보이고 있다. AP뉴시스


북한 정권수립 70주년에 맞춰 열린 9·9절 열병식이 과거와 달리 조용히 치러졌다. 열병식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포함한 핵무기가 등장하지 않았고, 미국을 향한 비난의 메시지도 없었다. 예상과 달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도 연설을 하지 않았다. 북한이 열병식 수위 조절을 통해 미국을 향한 유화적 메시지를 던진 것으로 보인다. 평행선을 달리는 듯했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AFP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북한은 9일 오전 10시부터 1시간30여분 동안 평양 김일성광장에서 열병식을 진행했다. 북한은 지난 2월 8일 건군 70주년 열병식 행렬 마지막에 공개했던 ‘화성 15형’ ‘화성 14형’ 등 ICBM을 이번에는 등장시키지 않았다. ICBM을 비롯한 탄도미사일과 신형 전략무기를 내놓지 않는 대신 대전차로켓 ‘불새’와 신형 152㎜ 자주포 등 재래식 ‘주체 무기’만 공개했다.

게다가 김 위원장은 열병식 연설을 하지 않았다. 대신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연설을 했다. AP통신은 “김영남이 핵무력이 아니라 정권의 경제적 목표를 강조한 개막 연설을 통해 열병식 행사의 기조를 비교적 부드럽게 했다”고 평가했다. 평양 현지 취재 중인 윌 리플리 CNN 기자는 트위터를 통해 “열병식은 예년과 달리 ICBM도 없었고 핵 프로그램에 대한 직접적 언급도 없었다”고 말했다.

미 본토를 사정권에 둔 핵 투발 수단인 ICBM이 열병식에 나타나지 않은 것 자체가 일종의 대화 메시지로 해석될 수 있다. 지지부진했던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에 종전선언 이행을 촉구하며 강경 노선으로 돌아서는 듯했지만 비핵화 협상 판 자체를 걷어차지는 않겠다는 의미다. 더욱이 정상국가화를 꾀하는 북한이 중국 러시아 등 외국 고위급 인사와 외신기자들을 초청해놓고 핵무력을 과시하는 것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 5일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특별사절단을 만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임기 내 비핵화를 실현해나가겠다는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북한은 내부적으로 체제 결속을 강화할 수는 있다”며 “하지만 대북 특사단 방북을 통해 알려진 북한의 비핵화 의지와 모순되는 군사적 시위를 보여줄 필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구체화된 북한 비핵화 로드맵이 도출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오는 18∼20일 3차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 핵 리스트 신고 관련 비핵화 시간표와 보상 조치가 조율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의 방북이 조만간 재추진될 가능성도 거론된다.

북한 매체도 정치·군사 강국이 됐다고 자평하면서도 핵·미사일을 거론하거나 미국을 직접적으로 비난하지는 않았다. 노동신문은 사설에서 ‘최강의 전쟁 억제력’을 갖췄다며 “평화 번영의 만년 보검을 틀어쥔 우리 조국이 경제 강국으로 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했다. 다만 북한이 지난해 11월 화성 15형을 시험발사한 뒤 ‘국가 핵무력 완성’을 이미 선언했기 때문에 이번 열병식에 굳이 신형 전략무기를 꺼내놓지 않았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정보 당국 관계자는 “이번 열병식에 동원된 병력 규모는 지난 2월 열병식 때의 1만2000여명보다 약간 증가했다”고 말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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