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8차례의 메이저대회는 30대 노장인 로저 페더러(37·3회 우승), 라파엘 나달(32·3회 우승), 노박 조코비치(31·2회 우승)가 나눠 가졌다. 어느 종목보다 스피드와 체력소모가 심한 운동이어서 30대부터는 하향세라는 테니스계의 불문율이 무색할 정도다. 10년 전 세계를 호령했던 이들 빅3는 경륜과 정교함, 철저한 자기관리로 체력열세를 만회하면서 20대 신예들이 범접하지 못할 경지에 올라 화려한 제 2의 전성기를 써내려가고 있다. 테니스계의 노병은 죽지도 사라지지도 않았다.
조코비치는 10일(한국시간) 막을 내린 2018 US 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에서 후안 델 포트로(29)를 3대 0으로 압도하며 정상에 올랐다. 2011년과 2015년에 이은 US 오픈에서의 세 번째 우승컵이며 올 들어 윔블던에 이어 메이저대회 2연패를 이뤘다. 약 2년간 부상 등으로 부진했던 조코비치는 이번 우승으로 완전한 부활을 알렸다. ATP 세계랭킹도 6위에서 3위로 올랐다. 나달, 페더러가 각각 1, 2위다. 재밌는 것은 10년 전인 2008년 초 랭킹 역시 1∼3위가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순이었다는 점이다.
세월의 흐름을 거스르는 세 선수는 ATP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 이들은 나란히 역대 그랜드슬램 우승 횟수 1, 2, 3위를 차지했다. 그랜드슬램 최다 우승자는 20번이나 정상에 오른 페더러이며 그 뒤를 나달(17회)과 조코비치(14회)가 쫓고 있다.
노병의 활약 때문인지는 몰라도 남자테니스계는 20년 가까이 세대교체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세계 3위까지 올랐던 알렉산더 즈베레프(21)와 스테파노스 치치파스(20) 등 젊은 선수들이 매번 도전하지만 한 번도 메이저대회에서 우승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체력 및 파워를 갖춘 신예들이 빅3의 노련한 경기 운영 능력과 정교한 기술력을 좀처럼 못 넘고 있다. 유진선 의정부시청 테니스팀 감독은 “젊은 선수들이 전체 경기를 운영하는 능력에 있어 ‘빅3’를 따라가지 못한다”고 평가했다. 유 감독은 “베테랑들은 뛰어야 할 때와 포기해야 할 때 등을 냉정하게 판단한다. 집중력과 판단력이 질적으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페더러의 변화무쌍한 공격 패턴과 나달의 위력적인 톱스핀(볼 회전력), 조코비치의 리턴 플레이 등 각자의 킬러 콘텐츠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한데다 세밀함까지 갖춰 이들을 공략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 유 감독은 “이들은 신예들보다 훨씬 과감하게 스윙하고 다채롭게 공격한다. 자신의 실력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라고 말했다.
서로에게 자극을 주는 경쟁자이자 좋은 동료로 존재하면서 전성기를 연장하고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유 감독은 “서로를 의식하며 노력했기에 계속해서 정상권의 실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빅3가 제 2의 시대를 활짝 열자 팬들은 앤디 머레이(31)의 부활도 고대하고 있다. 이들 4명은 2010년대 초중반 메이저대회를 사이좋게 휩쓸며 이른바 ‘4대천왕’ 시대를 구가한 바 있다. 2016년 11월 세계 랭킹 1위까지 오른 머레이는 엉덩이 부상 등으로 인해 내리막을 타며 지금은 순위가 307위까지 떨어졌다. 머레이는 내년 1월 호주 오픈을 목표로 최대한 몸 상태를 끌어올리고 있다. 머레이가 부상을 털고 부활해 4대천왕의 시대를 다시 열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방극렬 기자 extre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