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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그림하일드의 상처깁기



노을 지는 풍경 속에 희로애락 애오욕(喜怒哀樂 愛惡欲) 감정을 놓아버리고 짙은 가을의 내음을 에스프레소 한잔에 녹여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되는 시기이다. 주체하지 못한 욕망과 불안이 사라져가는 시기이기도 하기에 새로운 사랑을 갈망하기도 하고, 그 힘으로 마주하지 못했던 상처를 느끼며 고독에 빠지기도 하는 시기이다.

아쉽지만 올 가을의 프롤로그는 3년 만에 다시 찾아온 ‘메르스’가 장식하고 있다. 계모가 준 독사과를 먹고 심장이 멈추어 유리관속에 누워있던 백설공주의 심장을 손으로 압박하고 키스를 하여 새 생명을 준 왕자처럼 그 상처가 빨리 아물어, 다시 가을의 향기가 가득한 시기가 빨리 오기를 기대해본다

백설공주를 찾아가 독사과를 준 계모의 이름은 보통 이름보다는 그냥 ‘백설공주에 나오는 계모/왕비’ 정도로만 불려서 이름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원작 동화에서는 아예 이름이 없기도 하지만 이제는 ‘그림하일드’라는 버젓한 브랜드를 갖고 디즈니가 만든 밉지만 매력적인 캐릭터로 유명하다.

그림하일드는 자신이 아끼던 마법의 거울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백설공주로 말하기 시작하기부터 그녀의 질투는 극에 달하고 자신의 딸을 죽이려는 시도까지 하게 된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다양한 감정들이 공존하고 있다. 단순히 악한 마음과 선한마음을 가르는 이분법적 사고를 뛰어넘는 그 이상의 내포하지만, 그림하일드는 마법의 거울에 자신의 내면을 맡기고, 그로 인해 받은 상처를 다른 방법으로 승화시키지 못하고, 독으로 상처를 치유하려 하다 비극을 맞게 된다.

우리는 서로에게 있어 거울이나 다름이 없다. 특히 요즘 같이 SNS가 활발한 시대에 있어서는 더더욱 말이다. 상사나 동료의 한 마디에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기도 하고, 페이스북에 올린 댓글에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하니 말이다. 결국 우리의 삶은 어찌 보면 일상에 마주치는 거울을 끊임없이 보며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 삶과 다름이 없는 것이다. 나는 타인에게 어떠한 거울이 되어주고 있는가? 이 가을에 한 번쯤은 고민해 볼 수 있는 문제이다. 상대방을 비추는 나의 모습은 다시 나에게로 돌아오기 마련이기도 하고, 내 자신의 내면의 거울을 투영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림하일드는 마법의 거울이 비춘 모습은 자신의 내면의 세계라는 것을 수용하지 못해 결국 큰 상처를 받고, 그 상처가 서로에게 독이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하였다. 그렇듯 우리가 남에게 눈빛으로, 목소리로, 얼굴 표정으로 하는 모든 행위들은 타인을 비추기도 하는 행동이지만, 결국은 나의 내면을 투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홍수처럼 범람하는 정보와 선택의 고문 속에 치여 상처를 않은 채 하루하루를 보내는 우리들에게 마냥 예쁘기만 한 거울이 되라고 강요할 수는 없다. 하지만 자신의 방식대로 서로의 상처를 공감할 수 있는 거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을 향기에 자신의 내면을 바라 본 이의 아픔과 사랑이 공존하는 그런 울림을 줄 수 있는 거울말이다. 이 가을에는 깊지만 가벼운 거울 하나쯤은 가져 보는 게 어떨까?

강도형 정신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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