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시사  >  종합

잘 나가는 AI, 일자리가 떨고 있다

사진=게티이미지





 
사진=게티이미지




인공지능(AI)이 사람의 일자리나 일하는 방식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전망은 몇 해 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사라지는 직업과 살아남을 직업, 새롭게 부상할 직업이 무언인지에 관한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과거엔 사무직·생산직처럼 단순 반복적 직무만 로봇이 대체할 것이라 예상됐지만, 이젠 전문직도 안전하지 않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AI는 이미 금융·의료·법률 같은 분야에서 일부 활용되고 있다. 위기론과 낙관론은 여전히 맞선다. AI 도입으로 대량 실업과 사회적 혼란이 일어날까. 예전에도 그랬듯 사라지는 일자리보다는 새로운 일자리가 더 많이 생겨날까. 뭐가 정답으로 판명될지는 두고 봐야겠지만, AI의 인력 대체와 그로 인한 특정 일자리 소멸은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양측 모두 이견이 없다. 누군가는 자신의 지금 일자리를 잃어야 한다는 뜻이다. 잘살아보자고 만든 기술이 사람의 생존을 위태롭게 만들 수 있다면 대책을 찾아야 한다. AI에 대한 논의가 모두 거기서 시작한다.

“우리나라 일자리 43% 고위험”

AI와 일자리에 대한 본격적 논의는 2016년 시작됐다. 그해 1월 제46차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4차 산업혁명에 따른 미래 일자리 변화 전망’ 보고서에서 2020년까지 세계적으로 일자리 717만개가 사라지고 210만개가 생겨날 것으로 전망했다. 결과적으로 약 507만개가 사라진다는 진단이었다. 사라지는 일자리 수는 업종별로 사무·행정이 479만개로 가장 많고 제조·생산 160만개, 건설·채굴 49만개, 예술·디자인·환경·스포츠·미디어 15만개, 법률 10만개, 시설·정비 4만개 순이었다. 새로 생겨날 것으로 예상되는 일자리 수는 경영·금융 49만개, 관리 41만개, 컴퓨터·수학 40만개, 건축·공학 33만개, 판매 30만개 등이다.

그보다 3년 전 영국 옥스퍼드 대학 마이클 오스본, 칼 프레이 교수는 20년 안에 사무직 절반이 로봇으로 대체될 것이라 결론내린 논문을 발표했다. 두 학자는 업종별로는 수송 물류 사무직 행정지원 서비스 생산직 대부분이 AI로 대체될 것이라 예상했다.

기업은 수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만큼 경제성이 있다면 사람보다 로봇을 쓴다. 인건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자동화를 의미하는 기계 대체는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한국고용정보원은 지난해 1월 ‘기술 변화에 따른 일자리 영향 연구’ 보고서에서 2025년까지 AI와 로봇이 사람의 업무 상당 부분을 대체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문가 21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업무 대체 가능성은 7점 만점 기준으로 2016년 2.76점, 2020년 3.57점 2025년 4.29점으로 빠르게 높아졌다. 대체율 70% 이상인 고위험 직업군에 종사하는 사람이 2025년 전체 취업자 중 61.3%를 차지할 것이란 예상도 내놨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5월 발표한 ‘인공지능에 의한 일자리 위험 진단’ 보고서에서 우리나라 전체 일자리의 43%가 AI 대체 가능성이 높은 고위험군이라고 지적했다. 사무직·판매직·기계조작직이 3대 고위험 직업군으로 꼽혔다. 이들이 고위험 일자리의 70%를 차지한다.

사라질까, 살아남을까

AI와 로봇 기술의 발전·도입은 일자리 변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사라지는 일자리와 새롭게 생겨나는 일자리가 있다는 이야기다. 사라지지 않는 일자리도 업무 형태가 바뀔 가능성이 크다. 2015년 BBC방송은 영국에서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직업을 발표했다. 텔레마케터(99%), 컴퓨터 입력 요원(98.5%), 법률 비서(98%), 경리(97.6%) 등은 대체 확률 100%에 육박했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실행한 연구에서 자동화 대체 확률이 높은 직업은 콘크리트공(99.9%), 정육원 및 도축원(99.8%), 청원경찰(99.7%) 등이었다.

향후 유망 직업은 AI·로봇 전문가, 생명정보 분석가, 의료정보 분석가, ‘닥터 셰프’ 등이 가장 쉽게 꼽힌다. 닥터 셰프는 개인별 상태에 맞춘 의약품과 음식을 제공하는 새로운 직업이다. 가상현실(VR) 사물인터넷(IoT) 분야도 유망 업종이다.

AI는 고임금 전문직도 위협하고 있다. AI를 이용한 암 진단 프로그램, 법률 지원 프로그램, 자동 회계 프로그램 등은 일부 현장에서 이미 사용되고 있다. 2015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에 인수된 업체 ‘퓨처 어드바이저’는 AI를 이용한 개인 맞춤형 금융투자 자문 서비스를 제공한다. 미국 ‘내러티브 사이언스’는 AI가 작성한 기업실적 분석 정보를 경제 전문지 포브스에 제공하고 있다. 홍콩 ‘딥 날리지’ 벤처캐피털은 생명과학 벤처기업을 대상으로 한 전문 분석 AI를 투자 이사회 임원으로 임명하고 사람과 같은 1표를 주기도 했다.

다보스포럼 보고서는 7세 이하 어린이의 65%가 기존에 없는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 직업은 화이트칼라나 블루칼라가 아닌 ‘뉴칼라(New Collar)로 정의된다.

기술 진보에 따른 새로운 일자리가 어떤 모습일지에 대한 논의는 다소 극단적이면서 추상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하나의 일자리는 다양한 직무로 구성돼 있는데 이들 모두를 AI로 대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AI가 대체하는 건 특정 직무(작업)일 뿐 직업 그 자체가 아니라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AI가 도입되면 인간과 AI가 협업하는 방식으로 업무 형태가 바뀔 수 있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텔레마케터는 오래전부터 기계 대체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직업 중 하나였지만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들은 단순 안내에서 임기응변이 필요한 업무로 전환한 사례다.

인공지능의 한계

AI와 로봇이 모든 직무를 대체하긴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AI는 사회적 관계를 맺거나 정서적 교감을 나누는 데 한계가 있다. 상대와 친분을 쌓아가며 설득·협상하는 세일즈맨, 타인에 공감하며 보살펴야 하는 간호사 등은 대체가 어려운 직군으로 꼽힌다. 로봇 기술은 아직 인간처럼 신경·근육·관절을 섬세하게 사용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활용 범위가 제한적이다. 육체노동을 대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일본 소프트뱅크의 인간형 로봇 ‘페퍼’가 일부 상점에서 판매 업무를 하지만 실제론 전시 마케팅용에 그친다. 로봇 운영 가격이 일반 종업원 임금보다 비싼 데다 AI는 아직 다양한 고객 요구에 일일이 응대할 정도로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화가 조각가 사진작가 가수처럼 창의성과 인간적 스토리가 필요한 예술 분야도 로봇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스포츠도 마찬가지다. 인간 육체와 정신의 한계를 확장해가는 것을 목표로 하는 분야에 로봇을 도입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고용정보원 연구에서는 관리직과 전문직의 대체 가능성이 낮게 나왔다. 변화하는 상황을 판단해 의사결정을 해야 하는 일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대신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자료를 수집·분석해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지만 책임을 질 순 없다. 최종 결정은 결국 인간이 내려야 한다. 의료·법률·금융 분야에서 활용되는 인공지능도 대부분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해 분석하는 용도일 뿐이다.

자동화할 수 있다고 무조건 도입되는 것도 아니다. 기업은 경제성이 없으면 도입하지 않는다. 경제성이 있더라도 사회적 합의(수용)와 법·제도 정비가 없으면 도입에 한계가 있다. 인공지능으로 대체 가능한 업무 중엔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영역이 많다. 현재로선 인공지능과 로봇이 아무리 발달해도 직접 의료와 법률적 변호를 할 수 없다.

박가열 고용정보원 연구위원은 한 보고서에서 “앞으로 더욱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인간을 대신해 담당할 직무 영역이 어디까지인지 사회적으로 합의하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자동화에 따른 생산성 향상의 열매를 사회 전체가 어떻게 공유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플러스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