핀란드에서 먼저 떠올리는 것은 오로라와 산타클로스다. 하지만 핀란드 여행에서 디자인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중 하나다. 핀란드 디자인의 특징은 인간 중심으로 기능을 우선시한다. 간결하지만 실용적이고, 화려하지 않지만 편안하다. 더하고 뺄 것 없는 단순·소박함 속에 은은한 아름다움이 담겨 있다.
수도 헬싱키는 2012년 세계디자인수도(WDC)로 선정됐다. 특히 2005년 탄생한 ‘헬싱키 디자인 디스트릭트’는 핀란드 디자인의 흐름을 가장 잘 보여주는 곳이다. 헬싱키 중심부 25개 거리에 핀란드풍 인테리어, 골동품, 패션, 보석류 상점부터 아티스트 스튜디오, 갤러리, 박물관, 레스토랑, 카페 등 210여개의 디자인 관련 상점이 모여 있다. 세계적인 브랜드는 물론 신진 작가의 작품까지 만날 수 있어 핀란드 디자인을 경험하고 쇼핑하기에 가장 적합한 방문지로 떠올랐다.
이곳에 자리잡은 로칼(Lokal)에 들렀다. 포토그래퍼 카트야 하겔스탐이 운영하는 갤러리이자 디자인 숍이다. 핀란드의 독립 예술·디자인·공예를 전시·소개하며 직접 선별한 디자이너의 제품도 판매한다. 20년간 프리랜서 작가로 일하다 2012년 봄 로칼에서 첫 번째 전시 ‘20+12’를 주최한 이래 유명 작가와 신진작가들을 위한 다양한 전시를 열고 있다. 쇼룸 같은 아담한 전시 공간에 작품들이 자리하고 있다.
공예·디자인 전문 헬싱키디자인박물관은 시내 남쪽 구시가지인 코르키아붸렌 거리에 있다. 19세기 말 건축가 카를 구스타프 뉘스트롬(1856∼1917)이 설계한 신고딕 양식 벽돌 건물에 있다. 1873년 설립된 디자인박물관은 산업디자인, 패션디자인, 그래픽디자인 등 주요 소장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핀란드 디자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입구에 들어서면 입장권 파는 곳 뒤 벽면을 장식한 핀란드 국민 가위인 피스카스 가위가 눈길을 끈다. 1층은 100여년에 이르면 핀란드 디자인의 역사와 흐름을 시대별로 한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2층에서는 다양한 기획전이나 특별전시가 열린다. 핀란드 글라스 디자인 거장 티모 사르파네바(1926∼2006)의 전시가 관심을 모았다. 투명한 유리를 이용해 다양한 색과 형태를 만든 기법이 놀라웠다.
교회에도 디자인을 입혔다. 템펠리아우키오 교회는 핀란드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냈다. 화강암을 깎아내며 만든 돌로 내벽을 만들고 돔 천장을 연결해 ‘암석 교회’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1961년 공모전에서 입상한 형제 건축가 티모 & 투오모 수오말라이넨이 설계를 맡았다. 그들이 처음 이 아이디어를 냈을 때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고 한다. 거대한 바윗덩이를 파내며 교회를 짓는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이었다. 결국 예산 문제로 원안의 4분의 1 크기로 1969년 완공됐다. 지금은 헬싱키를 대표하는 최고의 명물이자 관광 명소가 됐다.
교회 뒤쪽으로 돌아가면 풀과 꽃, 나무들이 마구 자라는 작은 바위산처럼 보인다. 언덕을 올라갈 수 있는 길도 있다. 초록색 둥근 지붕이 건축물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내부에서 보면 둥근 지붕 안쪽은 금빛 금속재질로 원을 그리듯 둥글게 만들어놓았다. 천장 주변은 방사형으로 200여개 창살을 설치해 유리창을 내놓았다. 태양에서 태양빛이 퍼져나오듯 창을 통해 자연광이 쏟아져 들어온다. 핀란드의 탁월한 건축 디자인을 잘 보여주는 이 교회는 자연의 음향 효과를 충분히 살리고 3000여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도 있어 음악회장으로도 활용된다.
핀란드는 사우나의 나라다. 인구가 550만명인데 사우나는 300만개가 넘을 정도로 핀란드 사람들에게 사우나는 생활의 중요한 부분이다. 휴식의 장소이자 사람들과 어울리는 소통의 장소다.
헬싱키 남쪽 헤르나사리 바닷가에 있는 ‘로울루’ 사우나가 유명하다. 과거 공업지대에서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곳이다. 인근에 크루즈 터미널도 있다. 도심과 바다를 자연스럽게 연결하도록 공모전을 통해 2015년 근사한 디자인의 사우나 건물을 완성했다. 건축설계는 아반토가 맡았다. 4000개의 열처리된 소나무 널빤지를 이용해 꾸민 스타일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블라인드처럼 외부를 장식한 널빤지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그늘도 생긴다.
건물은 해안가 바위섬을 닮았다고 한다. 시간이 흘러 나무 널빤지가 바닷바람과 눈비에 회색으로 바뀌면 바위처럼 보일 듯했다. 인근 주택가의 바다조망권을 위해 건물은 낮게 지어졌다. 뜨거운 사우나에서 시원한 바다로 바로 뛰어들 수 있도록 돼 있다. 또 바와 레스토랑이 있고 루프탑에서 전망을 즐길 수 있다. 연기가 몽글몽글 올라오는 굴뚝 뒤로 파란 바다와 멀리 요트가 정박해 있는 항구가 눈에 들어온다. 레스토랑에서 바다 갈매기를 벗삼아 와인과 순록고기를 먹을 수 있다.
핀란드 디자인은 핀란드 최대의 국영항공사 핀에어 기내에서도 만날 수 있다. 60년 전통의 핀란드 대표 패션 디자인 브랜드 ‘마리메꼬’(Marimekko)와 협업해 상큼한 연두색과 파란색의 담요와 베개를 제공한다. 화려한 색감과 심플한 디자인이 안락함을 선사한다. 여기에 유리잔도 핀란드 회사인 이딸라(Iittala)가 빙하를 모티브 삼아 만든 ‘울티마 툴레’(Ultima Thule)다.
헬싱키(핀란드)=글·사진 남호철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