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실에서 여러 사람이 원탁에 둘러앉아 회의를 하고 있다. 회의를 진행하는 심각한 표정의 김 부장은 두 손으로 턱을 괴고 있다. 이 과장은 고개를 숙이고 필기에 몰두한다. 정 대리는 한 손으로 턱을 받치고 있다.
신간 ‘나의 뇌는 나보다 잘났다’는 이런 일상을 뇌 과학의 관점에서 설명해주는 책이다. 형편없는 실적을 듣고 싶지 않은 이 과장은 부장과 눈을 마주치지 않고, 평소 부장을 잘 따르는 정 대리는 자기도 모르게 부장과 비슷한 자세로 앉아 회의에 집중한다.
독일의 뇌 과학자인 저자 프란카 파리아넨은 막스플랑크 연구소에서 뇌와 사회의 연관관계를 연구하고 있다. 그는 서문에서 “우리 뇌는 언제나 타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데 이 뇌를 잘 안다면 우리 자신을 깊이 이해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관계도 잘 조율할 수 있다”고 말한다. 부제는 ‘인간관계가 불편한 사람을 위한 뇌 과학’. 2개의 뇌가 만날 때 일어나는 상황에서 시작해 70억개의 뇌가 만나는 지구 위의 공동생활에 대해 탐구한다.
책은 우리가 흔히 겪는 관계의 여러 상황을 뇌 과학의 원리로 쉽게 설명한다. ‘감정전염’을 보자.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수다를 떨기로 했다. 친구를 기다리는데 손님 몇 명이 소란스럽게 다투다 일어서는 장면을 목격한다. 잠시 후 친구가 나타난다. “오늘 어땠어”라고 물으면 나도 모르게 “별로였어”라고 말하게 된다. 저자는 이렇게 감정이 타인에게 전이되는 것을 ‘감정전염’이라고 부른다.
뇌 스캔을 통해 두 실험 대상자의 뇌를 보자. 감동하는 상대를 보면 감동과 관련 있는 체감각피질이 활성화되고, 구역질하는 사람을 보면 역시 이와 관련 있는 미각피질 등이 반응한다. 감
정전염은 뇌의 미러링(Mirroring·상대모방) 결과다. 미러링은 상호 이해에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감정 표현에도 큰 영향을 주는데, 얼굴로 보여주는 감정과 실제 감정이 계속 상반되면 좋지 않다.
예를 들어 ‘고객은 왕’이라는 기치에 따라 미소라는 응대 매뉴얼을 강요받는 서비스직 종사자들은 화가 날 때도 참다 보니 심리적 갈등을 자주 겪는다. 표정과 감정이 모순되면 단기적으로 심박동이 빨라지고 장기적으로는 언어 능력이 감퇴된다. 번아웃신드롬(Burnout syndrome·무기력증)에 걸릴 위험도 상당히 크다. 분노 상황에서 우리는 공격적으로 될 수도 있고, 도피적 반응을 할 수도 있다. 저자는 상대에 대한 공감을 통해 상황을 반전시키는 제3의 길인 ‘친구 되기’가 있다고 소개한다.
공동체 생활에서는 신뢰가 중요하다. ‘신뢰 게임(Trust game)’은 상대를 신뢰할 경우 장기적으로 모두에게 더 이득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실험이다. 아이 둘이 있다 치자. 높은 선반 위에 있는 초코바를 꺼내기 위해 한 아이는 바닥에 엎드리고, 다른 아이는 그 등 위에 올라가 초코바를 얻는다. 대부분의 아이는 엎드린 아이와 초코바를 사이좋게 나눠 먹는다. 협동은 초콜릿 외에도 서로에게 친밀감을 심어주고 다른 협력의 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에 둘은 기분이 좋아진다.
저자는 우리 뇌는 계속 변하기 때문에 좋은 방향으로 쓰다 보면 공감과 신뢰가 늘어나면서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강조한다. 흥미로운 사례와 실험 결과가 제시돼 책장이 제법 잘 넘어간다. 주(註)와 참고문헌만 635개다. 물론 인용이 많다 보니 어떤 대목은 건조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재미있고 똑똑한 뇌 설명서다.
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