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3일 “북한이 현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 핵물질, 핵시설, 핵 프로그램 이런 것들을 폐기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물꼬를 트기 위해 북한에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를 압박한 것이다. 다만 문 대통령은 미국이 북한의 체제보장 요구를 일정 수준 받아들이는 ‘접점’을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문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열린 남북 정상회담 원로자문단 오찬 간담회에서 “이제 북한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할 일은 미래 핵(폐기)뿐만이 아니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은 그(기존 핵 폐기)에 대해 미국에 상응하는 조치를 요구하고 있다”면서 “북한이 좀 더 추가적인 조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국에서 상응하는 조치가 있어야 되겠다고 하는 것이 지금 북·미 간 교착의 원인인 것 같다”고 지적했다.
문 대통령은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 폐기와 동창리 미사일 엔진 시험장 해체, 미군 유해 송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제외한 9·9절 열병식을 거론하면서 “미래 핵은 북한이 폐기하는 조치를 이미 취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미국에선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 말고는 한 것이 없지 않으냐. 북한이 취한 조치는 다 불가역적인 조치인데, 우리 군사훈련 중단은 언제든 재개할 수 있는 그런 것 아니냐(고 북한은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이 ‘동시 행동’ 원칙을 중시하는 북한에 반대급부를 제공해야 한다는 취지다.
문 대통령은 “서로 상대에게 먼저 이행하라는 요구를 가지고 지금 막혀 있는 것이어서 충분히 접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그 접점을 찾아 비핵화가 보다 빠르게 진행되게끔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3차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끌어내려는 북한이 취할 만한 카드를 제안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도 이날 서울안보대화(SDD) 기조연설에서 “남북 정상은 더 구체적인 비핵화 방안을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간 군사적 긴장 완화 추진에 대해선 “서해 평화수역 설치 문제가 구체적으로 협의되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 이날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남북 군사 실무회담에선 서해 북방한계선(NLL) 일대에 함정 출입금지 구역을 설정하는 방안 등이 오후 늦게까지 논의됐다. 다만 NLL을 해상기준선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북한이 3차 남북 정상회담 합의문에 평화수역 설치를 포함시킬지는 미지수다. 이밖에 남북은 군사 실무회담에서 경계소초(GP) 시범 철수와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의 비무장화, 비무장지대(DMZ) 내 공동 유해 발굴 방안도 논의했다.
남북은 14일 오전 판문점에서 정상회담 방북단 규모와 세부 일정을 조율하기 위한 실무협의를 열기로 했다.
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