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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지로·퇴계로도 차선 줄이기… 도심 매력 ‘뿜뿜’

내년 6차선을 4차선으로 축소하는 도로공간 개편 공사를 앞두고 있는 서울 을지로의 모습(왼쪽)과 올 초 도로공간 개편 공사를 마친 서울 퇴계로의 회현역 일대 모습. 윤성호 기자



 
서울로 7017


한양도성으로 둘러싸인 서울 도심부에서 가장 중요한 도로로는 종로와 을지로, 퇴계로가 우선 꼽힌다. 이 세 도로는 도심 교통의 축이다. 그러나 보행의 축은 아니다. 서울 도심에서 보행은 사실상 방치된 주제였다고 할 수 있다. 서울시가 이 세 도로의 개편에 착수했다. 도로에서 차로의 비중을 줄여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을 위한 공간을 늘리는 방향이다.

퇴계로는 이미 1단계 구간 공사가 완료됐다. 남대문시장에서 명동까지 도로 모습이 확 달라졌다. 기존 6차선이 5차선으로 줄었고, 신세계백화점 앞쪽의 12차선은 10차선이 됐다. 차선 축소를 통해 확보된 공간은 보행량이 압도적으로 많은 남대문시장 쪽 보행로를 2배 이상 넓히는데 사용했다. 명동에는 남산으로 가기 쉽도록 횡단보도도 신설했다.

내년에는 명동에서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까지 퇴계로 2단계 공사가 예정돼 있다. 이렇게 되면 서울역 앞 고가보행로인 서울로 7017에서 남대문시장, 회현역, 신세계백화점, 명동, 남산, 동대문까지 활보할 수 있게 된다. 서울을 찾는 외국인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명소들이 쾌적한 보행로로 이어지는 것이다.

서울시내 대표 도로라고 할 수 있는 종로는 지난해 말 8차선을 6차선으로 줄인 후 버스전용차로와 자전거도로를 새로 개통했다. 차로 2차선을 녹색교통공간으로 재편한 것이다. 지난 4월 개통된 종로 자전거도로에는 도심을 자전거로 다닐 수 있게 하겠다는 서울시의 강력한 의지가 표현돼 있다. 자전거 통행량이 많지 않다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앞으로 늘어날 도심 자전거도로의 축선을 확보했다는 의미는 가볍지 않다.

시청역에서 동대문역사문화공원까지 을지로 3.7㎞ 구간에 대한 도로 개편은 내년 시작된다. 현재 설계가 한창이다. 주민설명회도 조만간 개최된다. 6차선을 4차선으로 줄이고 자전거도로를 놓는 게 핵심이다.

내년 을지로까지 도로 개편이 완료되면 서울의 도심은 새로운 얼굴을 가지게 된다. 자동차들이 가득했던 도심부가 보행자가 활보하고 자전거가 돌아다니는 거리가 된다.

서울이 과도하게 자동차 중심적인 도시라는 걸 알려주는 통계들은 많다. 서울시에 따르면, 한양도성 안으로 ㎢당 하루 평균 약 4만대의 승용차가 유입된다. 영국 런던의 교통혼잡지역(Congestion Zone)이 ㎢당 약 1만대라고 하니까 서울이 그보다 4배나 많은 셈이다. 한양도성 안으로 진출입하는 차량은 하루 평균 129만여대. 이중 62%가 승용차고, 나머지는 택시(26.4%), 트럭(7.6%), 버스(4.1%) 등이다.

세계 주요 도시들의 보도 비율을 보면 뉴욕 맨해튼 5번가 45.8%, 런던 옥스퍼드 거리 50.4%, 파리 샹젤리제 거리 57.4%로 차로 대 보도 비율이 반반 정도 된다. 그러나 서울 종로의 보도 비율은 27.8%에 불과하다.

‘걷는 도시, 서울’을 내걸고 꾸준히 차선 줄이기를 해온 서울시가 마침내 도심부 핵심 도로들을 겨냥하기 시작했다. 지난 8월 한양도성 안 주요 간선도로의 차로를 최대 4차로(버스전용차로를 포함할 경우 최대 6차로)로 축소하는 ‘도심 도로공간 재편’을 내년부터 추진한다고 발표했다. 을지로, 퇴계로, 세종대로 등 21개 간선도로가 대상이며 총 29.3㎞를 손질한다.

종로, 새문안로, 퇴계로(1단계) 3곳에서는 이미 도로 개편이 완료됐다. 내년엔 을지로와 퇴계로(2단계) 공사가 시작된다. 세종대로, 남대문로, 삼일대로, 율곡로 등 나머지 도로들은 2022년까지 정비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도심 승용차 교통량을 2030년까지 지난해의 70% 수준으로 떨어뜨리고 보행과 자전거, 대중교통 등 녹색교통 이용공간을 현재보다 2배 이상 늘린다는 게 서울시의 목표다.

도심 차선을 일제히 4차선으로 줄인다는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도심 교통난을 우려하는 목소리들도 커지고 있다. 을지로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여기서 차선을 줄인다면 차를 갖고 다니지 말라는 얘기 아니냐”며 걱정했다.

2015년부터 서울시에서 도로공간 재편 업무를 담당해왔다는 한 공무원은 “차로를 줄이면 이전보다 차가 더 막히는 건 맞는 것 같다. 그러나 시민들이 새로운 도로 환경에 적응해 나가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해 퇴계로 1단계 개편 작업을 하는 동안 한 번도 좋은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면서 “아무도 좋다는 사람이 없는데 시장님이 왜 이걸 하는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고 했다. 주민들과 상인들을 설득하는데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고, 사업설명회가 무산된 적도 여러 번이었다.

그는 “차선을 줄이는 건 다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며 “그동안 도심에서 차로를 줄여본 경험 자체가 없었다. 차로를 줄이려고 한다니까 상인들이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서울에서 도심부 핵심 도로들을 개편한다는 건 초유의 일이고 대담한 도전이다. 정석 서울시립대 교수(도시공학과)는 “전 세계 주요 도시들이 도심 도로를 보행 위주로 개편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이것이 바로 도시혁명”이라고 말했다. 정 교수는 또 “도심에 보행자가 늘어나면 그 도시의 매력도가 올라가고 사람들이 모여들어 장사도 더 잘 된다”면서 “다만 서울시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안 된다. 주민, 상인 등 이해관계자들과 공감대를 이뤄 단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 ‘서울로 7017’ 개장 1년
보행량 늘고 상권 살아나… ‘보행도시’ 자신감 얻었다


지난해 5월 개장된 ‘서울로 7017’(사진)은 서울을 자동차도시에서 보행도시로 전환한다는 선언문과 같은 것이었다. 45년간 서울역 앞의 핵심 도로였던 고가차도가 꽃과 나무가 어우러진 공중보행로로 변신했다.

서울로는 ‘걷는 도시, 서울’이라는 서울시의 목표가 가장 분명하고 가시적으로 표현된 사업이다. 박원순 시장 취임 이후 보행환경 개선을 위한 다양한 사업들이 진행됐지만 서울로 개장을 계기로 비로소 박 시장의 ‘보행도시’ 철학이 시민들에게 각인됐다고 할 수 있다.

서울역 고가는 서쪽 만리동 방면과 동쪽 남대문시장 방면을 잇는 주요 차도였다. 그러나 동서간 보행로는 철길과 고가 때문에 단절돼 있었다. 서울로는 차도를 없애고 보행로를 놓겠다는 대담한 결정이었다. 또 보행을 살려 사람들을 모이게 하고 이들을 주변 지역으로 흘려보내 낙후된 동네의 발전과 재생을 도모하는, 보행과 도시재생을 결합하는 사업이었다.

서울시는 지난 5월 개장 1주년을 맞아 서울로 누적 방문객이 1000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외국인도 약 200만명이 다녀갔다.

건축도시공간연구소가 서울시 용역을 받아 작성한 ‘서울로7017보행특구 보행영향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서울로와 그 주변을 포함하는 서울로7017보행특구(1.7㎢)의 보행량은 서울로 개장 시점인 2017년 5월과 비교해 2018년 3월 주중 14.7%, 주말 36.1% 증가했다. 특히 만리동 쪽에서 서울로를 지나 남대문시장과 퇴계로로 가는 보행축이 대단히 활기를 띠고 있고, 서울역에서 남대문과 시청을 지나 세종대로로 이어지는 보행축도 활성화된 것으로 조사됐다.

보행특구 내 상권 업체수는 2015년 6월 7469곳에서 2017년 9월 1만6곳으로 34.8% 늘었다. 퇴계로, 소월로 등은 서울로 개장 후 보행량이 늘고 상권이 살아난 대표적인 사례다.

서울로 주변 교통상황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보여주는 자료는 아직 없다. 서울시 보행정책과 관계자는 “서울로를 통해 시민들은 도심에서 차로를 없애도 별 문제가 없구나, 보행로를 만드니까 이렇게 좋아지는구나, 이런 걸 경험했다”면서 “서울로의 성공을 통해 도심부 간선도로 개편에 대한 공감과 동력을 확보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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